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7일 자신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승진시켜 2인자로 내세운 것은 3남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 작업을 중단했거나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최근 부쩍 노동당 중앙위와 정치국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때 김정은이 이미 노동당 고위직을 맡아 후계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란 엇갈린 관측도 나온다.
장성택 카드 내세운 이유는?
이승열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8일 북한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고 공언한 2012년까지 후계문제를 마무리하려면 지금쯤은 후계자가 공식화돼야 한다며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에 직접 제의하는 형식으로 장 부장을 2인자로 등극시킨 것은 아예 혈통승계를 포기하고 장 부장으로의 권력승계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북 소식통도 노동당 중앙당이 최근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소집해 김정일 시대는 백년 천년 영원할 것이며 후계문제를 언급하는 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할 것이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올해 초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살 또는 철직을 당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과 2일 교통사고로 숨진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실제로는 김정은 옹립에 나선 죗값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을 후견하던 세력이 잇달아 사라지는 이상한 움직임을 제2의 정하철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상황이 2000년대 초 정하철 노동당 중앙위원이 김 위원장의 마음을 잘못 읽고 김정철과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를 우상화했다가 숙청당한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김 위원장이 장 부장에게 김정은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겼다는 관측도 있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장 부장이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을 도울 것으로 보지만 단순한 후견인의 차원을 넘어 후계자 김정은이 내놓은 급진적 정책을 톤다운(완화)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후계 위해 노동당 기능 회복?
그러나 김 위원장이 장 부장을 2인자로 부각시킨 것은 고령과 건강 이상으로 신체적, 심리적 후유증을 겪는 상황에서 가족과 측근에 의지하려는 심리를 반영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반론이 있다. 김정은이 비밀리에 노동당 내 고위직을 맡아 물밑에서 자신의 후계체제를 구축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7일 최고인민회의 결과를 보도하면서 회의에서는 첫째 의정으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제의에 따라 김영일 대의원을 내각총리에서 소환하고 최영림 대의원을 내각총리로 선거했다고 전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정치국의 제의에 따라라는 표현이다.
북한 지도부가 내각 총리를 임명할 때 정치국 제의에 따른 것임을 언급한 것은 1988년 노동당 중앙위 제6기 15차 전원회의에서 연형묵 당시 총리가 임명될 때 이후 22년 만에 처음이다.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언급된 것도 1998년 제10기 최고인민회의에서 홍성남 총리 임명 이후 12년 만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이미 정치국 위원으로 활동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도 1974년 중앙위 정치위원으로 임명된 사례가 있다.
김일성 주석 생전에 노동당 정치국은 중요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의 중심이었다. 1994년 김 주석이 사망하고 1998년 아들 김 위원장이 공식적인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면서 정치국의 기능은 현저하게 낮아졌다. 김 위원장은 협의체제로 운영되는 정치국 등 공식적인 노동당 기구를 통하지 않고 개별 엘리트에 대한 일대일 소통과 비밀파티 등 비공식 공간에서의 측근정치를 통해 중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15일 김 주석 생일을 기념한 중앙보고대회에서 14년 만에 당 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가 재등장한 것과도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1974년 2월 13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에 내정된 뒤 위대한 수령님과 당 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석호 윤완준 kyle@donga.com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