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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를 차기권력으로 민다고? 그것도 내가? 허허허(일)

김문수를 차기권력으로 민다고? 그것도 내가? 허허허(일)

Posted August. 07, 201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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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11시 반 서울 은평노인복지회관 구내식당에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들어서자 주민들이 반갑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 의원은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수저를 쥐여주며 시종일관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요즘 그는 선거운동 할 때처럼 구석구석을 돌며 당선 인사 중이다. 오후 1시 반, 함께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2층 복지관장 방에 앉았다. 주민 호응이 뜨거워 놀랐다고 하자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정치란 게 이렇게 하는 거지. 가르치거나 군림하지 말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지. 민감한 정치 이야기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은 인터뷰였다.

정치인 이전에 재기에 성공한 휴먼스토리 주인공으로 모실 만하다.

그는 호방하게 웃더니 바지를 걷어 올렸다. 왼쪽 무릎에 보는 사람의 눈을 찌푸리게 할 정도의 깊은 상처가 나 있었고 오른쪽 무릎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멍이 시커멓게 들어 있었다.

왜 힘든 선거운동을 자처했나.

야당 시절 3선을 하고 대여 투쟁을 하고 정권창출 과정에서 어느 한 진영의 대표를 하며 이끌다 보니 인간 이재오가 정치적인 이재오로 왜곡됐다. 이번 선거는 인간 이재오가 포장된 이재오를 벗겨내는 이재오와 이재오의 싸움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선거 떨어지고 미국 가 1년 있으면서 많이 반성했다. 왜 정치를 시작했는지 돌아봤다. 권력을 향유하고 권세를 누리는 자를 대변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변질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가 정치 인생의 1막이라면 진짜 이재오식 2막의 정치를 하고 싶다.

이재오식 정치란.

오늘 (배식봉사) 같은 정치다. 어르신 한분 한분에게 밥을 나눠주며 교감하는 정치 말이다. 주민들이 이재오가 돌아왔다고 하는 것은 객지에 나가 출세해 목에 힘주던 이재오가 친구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정말 지역일꾼만 할 것인가.

정치인은 자기 지역이 튼튼해야 한다. 그걸 토대로 국가를 바로잡고 개혁하는 거다. 3선 때까지는 밖의 눈으로 은평구를 보려고 했다. 그러니까 교만하게 보이고 권세를 누리는 것으로 보이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말이다.

교만 왜곡 오만 같은 말이 반복됐다. 정치이야기를 애써 피하려 했다. 기자는 약간의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소 길게 질문을 던졌다.

국회의원은 지역 일꾼이기도 하지만 지역 주민을 대표해 나라살림을 하는 사람이다. 당신의 복귀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스스로 말했듯 이번 정부와 공동운명체로 묶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당신이 미래 권력 설계에도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세금 내는 국민은 이재오라는 정치인이 무슨 구상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현장을 많이 다녔다고 하는데 자,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아무래도 경제 문제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해 보였다.

국회의원으로서 현장도 중요하지만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권익위원장 시절부터 하려 했던 건데 고용과 취업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 한쪽에선 일손이, 다른 한쪽에선 일자리가 모자란다.

(순간, 그게 권익위의 일이었던가 묻고 싶었지만 주제를 이어가기로 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대안이 뭔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에 시험을 보게 하지 말고 대졸이든 고졸이든 지방공단이나 중소기업에서 1, 2년 일하게 한 뒤 입사 지원 자격을 주는 거다. 종합병원가려면 동네병원 진단부터 받듯 중소기업에 의무적으로 보내는 게 어떨까.

요즘 젊은이들에게 과연 그걸 강제할 수 있을까. 또 기업 쪽에서 보면 채용의 자유를 박탈하는 거 아닌가.

대기업들도 경력 있는 사람 뽑으면 좋잖은가.

다음 말이 이어졌다.

또 재수생을 없애야 한다. 떨어진 학생들은 공장이나 농촌에서 1, 2년 일하게 하고 그 성적으로 대학 보내면 어떨까. 모든 것을 이처럼 일 중심으로 할 생각을 해야 한다(공무원들에게 탁상행정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런 법안을 만들 생각인가.

만들어야지. 하지만 검토해야 한다. 어떻든 놀고먹는 젊은이는 없어야 한다.

요즘 화두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당연한 이야기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희생으로 살려고 하면 안 되지.

그 역시 당연한 이야기다.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는가.

건설업계가 제일 심하다. 하청구조, 도급구조. 그런 것들이 경제 질서를 문란하게 한다.

민감한 주제가 아닌데도 우리의 대화는 자꾸 엇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 있던 보좌진에게서 (주제가) 너무 깊이 들어간다는 제지가 들어왔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 나는 솔직히 당신이 얼마나 겸손해졌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인이 일을 하려면 독선적이거나 오만할 수 있다고 본다.

군사독재와 싸우는데 독선이 없으면 어떻게 싸우나.

그는 하지만 지금은 민주화시대니까 리더십의 패턴이 독재시대와는 다르지. 지금은 평화를 열어야 하고, 통일을 열어야 하고, 상생을 해야 하니까라고 덧붙였다.

23평 단독주택에 수십 년째 살고 있다. 월급이 늘면 집을 늘리고 싶은 게 생활인들의 자연스러운 욕구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마음 없나.

지금 사는 집도 불편하 거 없는데.

물욕()이 없나.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다는 뜻이다.

남의 물욕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나.

그런 건 아닌데. 과다하고 지나치다 싶을 땐 거부감이 생기지.

자서전 함박웃음에 보면 정의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당신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누구에게나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 학력이나 부의 차이 때문에 기회가 봉쇄당하면 안 된다.

한국 사회는 아직 정의가 서지 않았다고 보나.

뿌리가 덜 내렸다고 본다. 식민지 군사독재 거치는 과정에서 정의보다는 적당한 것, 요령이나 기회주의가 뿌리를 더 박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바르게 사는 거지. 힘에 의해 즉, 부 권력 명예를 가졌다고 사실을 왜곡하면 안 되지.

부 권력 명예 그 자체도 사실을 구성하는 실체 아닌가.

부자가 가난한 자를 업신여긴다든지, 권력이 있기 때문에 불법을 해도 된다든지 그런 거 안 된다. 명예가 있다고 부도덕함이 가려져서도 안 된다.

당신의 인생이야말로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도 당신처럼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면 성공할 수 있지 않나.

물론 내 인생이야 그렇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 되기에는.

멀었다?

그렇다. 옛날에 비하면 엄청 좋아졌지. 하지만 부패, 비리의 요소, 우리도 모르게 습관화된 부도덕이 곳곳에 남아 있다.

주위에서 다음 일정 때문에 (인터뷰를) 계속 할 수 없다는 재촉이 이어졌다. 시간에 쫓겼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차기 권력으로 밀 것이라는 말이 있다.

문수? 문수와 친하지. 친한 정도가 아니라 동지니까. (근데) 내가 민다고? 허허허.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회동한다고 한다. 뭘 합의했으면 좋겠나.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박 전 대표는 어떤 사람인가.

좋은 분이지. 좋은 분이지.(그는 두 번에 걸쳐 반복했다.)

한나라당의 분열은 국민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정당이란 게 엎어졌다 자빠졌다 하는 거니까. 무너지지만 않으면 그 안에서 작은 울타리야 수없이 넘나드는 거니까.

이번 선거 끝난 후 대통령과 통화했나.

뭐하려고 하겠어?

지난 지방선거가 현 정권 심판의 성격이 있었다. 잘한 것과 못한 것을 짚어 달라.

한나라당이 좀 더 잘하라는 거지.

뭘 못했나.

경제를 살리겠다고 정권을 잡았는데 큰 틀에서는 살렸지.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정상을 회복했으니까. 하지만 그 그늘에서 어려운 사람은 계속 처지고 있다.

직언하는 참모가 없다고 하는데.

역대 대통령마다 나오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국민 뜻을 모를 리가 있나, 잘 알지.

앞으로 당에 분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나 때문에 당내 갈등을 일으키는 일은 없게 하겠다, 이 말이지.

그래도 정권창출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한다면 져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이다. 이제 그 방법을 성숙되게 하겠다는 거다.

어떻게?

그걸 다 가르쳐주면 어떻게 해?(웃음) 설득하고 타협하고 양보한다는 말이다.

개헌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자는 의견이 많잖은가. 국민도 원하고.

국민은 민생을 원한다.

그건 야당이 하는 소리인데. 민생과 개헌은 별개다. 개헌한다고 민생 안 챙기는 것은 아니다.

다음 행선지는 은평구 보훈회관이었다.

그는 이웃을 대할 때 허물이 없어 보였다. 권력의 언어가 아닌 서민의 언어로 그들과 젖어들었다. 인터뷰 때와는 달리 생기가 났다. 그런 그를 보며 권력 중심부라는 또 다른 현장에서 인간 이재오의 진정성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궁금해졌다.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