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충남의 한 시골마을에 살던 열두 살 남자 아이는 무일푼으로 서울에 왔다.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한 그는 1970년 서울 청계천변 동대문 통일상가의 한 피복공장에 취직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쉼 없이 옷을 만들고, 공장 안에서 잠을 잤다. 공장 주인은 노동자들이 옷을 훔쳐 도망칠까봐 밖에서 자물쇠를 걸었다. 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일하던 그에게 공장 아래층 중국집에서 올라오는 자장면 냄새는 고역이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싱사 전태일(당시 22세)이 분신자살했다. 그는 결심했다. 꼭 성공하겠다.
첫 월급 4500원으로 미제 구제(중고) 청바지와 구두를 샀던 동대문 피복공장 출신의 이 아이는 40년 후인 현재 국내 굴지의 패션회사를 이끌고 있다. 2002년 설립된 코데즈컴바인의 박상돈 회장(53)이다.
27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코데즈컴바인 본사에서 만난 박 회장은 여성복 남성복 속옷 캐주얼 등을 갖춘 코데즈컴바인은 내년 2월엔 아동복과 하이킹 라인도 새롭게 선보일 것이라며 새해엔 글로벌 시장을 더욱 활발히 개척해 한국형 SPA(제품의 기획, 판매, 유통을 일괄하는 방식) 브랜드로 세계에 우뚝 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 패션의 히트상품 제조기
박 회장은 한국 패션의 산증인이자 히트상품 제조기다. 그는 19세 때 피복공장(동대문 태화피복) 동료였던 미싱사 김종석 씨(2005년 별세)가 차린 청바지 하청공장에 들어가 재단사 겸 공장장으로 일했다. 그가 만든 청바지는 불티나게 팔리며 당시 도매시장을 주름잡던 두 회사인 키커진과 사계절을 위협했다. 박 회장은 옷을 보는 눈을 키우면 당장 큰돈이 없어도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때 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뱅뱅 사거리란 말이 생길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던 뱅뱅어패럴의 권종열 창업주가 동대문 패션 1세대라면 박 회장은 김종석 씨(1985년 잠뱅이 설립)와 함께 동대문 3세대에 해당한다. 박 회장은 1987년 스노진으로 대박을 터뜨린 후 1997년엔 옹골진이란 토종 청바지 브랜드를 히트시켰다. 한국인 체형에 맞게 스타일을 여럿 나눈 게 성공 요인이었다.
옹골진으로 브랜드의 위력을 깨달은 그는 1999년엔 이지 캐주얼 마루, 2001년엔 클래식 캐주얼 노튼을 론칭했다. 마루의 면바지와 니트가 너무 잘 팔려 패션업계에선 초록색 나뭇잎(마루의 로고)만 달아도 팔린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뚝심, 저력 갖춘 한국형 SPA 목표
스페인 SPA 브랜드 자라를 벤치마킹해 2002년 론칭한 코데즈컴바인은 그의 패션인생을 녹인 결정판이다. 흐르는 저지 소재로 겹쳐 입는 스타일이 특징이다. 박 회장은 처음엔 자라를 모방했지만 이젠 자라보다 더 패셔너블하고 더 빠르게 상품을 만들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고향인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서 딴 회사명 예신피제이를 이달 초 코데즈컴바인으로 바꾼 것도 새해부터는 이 브랜드를 글로벌 SPA로 집중해 키우기 위해서다. 이 브랜드의 가능성을 본 현대백화점은 올해 초 신촌점의 영 패션관인 유플렉스에 이례적으로 큰 330m(약 100평) 규모의 매장을 내줬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주 금요일 직원들과 야시장을 다니는 그는 말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았어요. 한국 패션이 해외 브랜드에 밀려 다 죽었다고요? 천만에요. 기획력과 순발력이 있으면 돼요. 그리고 우리 한국인에겐 뚝심과 저력이 있잖아요.
김선미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