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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자의 조국

Posted January. 19, 2011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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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스캔들이 나기 전 황우석 박사는 2005년 관훈토론회에서 이 말을 해 감동을 주었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세균학의 아버지인 루이 파스퇴르(18221895)였다. 그는 조국 프랑스가 독일(프로이센)과의 보불전쟁에서 패배하자 분노하며 과학자의 조국을 말했다. 과학지식 자체는 보편타당한 진리이지만 과학자는 이를 활용해 조국에 기여할 책무가 있다는 뜻이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 존 폰 노이만(19031957)은 독일과 스위스에서 활동하다 히틀러의 집권이 다가오자 미국으로 망명한다. 양자역학의 최고봉이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열정적으로 참가했다. 그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자행한 나치에 원폭을 투하하고 싶었겠지만 독일이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1억 총옥쇄()를 외치며 버티던 일본에 투하됐다.

중국과학원 원사(과학기술 분야 최고 영예 칭호)인 스창쉬(91) 박사는 중국 스텔기 전투기 젠()-20의 개발에 청춘을 바쳤다. 그는 제트기 엔진에 쓰이는 특수합금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시안()의 시베이 공학원을 졸업한 뒤 1948년 미국으로 떠난 초기 유학파다. 625전쟁 기간 미국이 중국으로의 출국을 금지했던 35명의 중국 과학자 중 한 명에 그도 포함돼 있었다. 1955년 출국금지가 풀리자 스 박사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중국행을 택했다. 스 박사의 지도교수가 왜 험난한 길을 가려는가라며 만류했지만 그는 조국이 일할 사람이 없어 어려운데 외면할 수는 없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문화혁명의 암흑기 속에서도 제트기 엔진 개발에 매진한 그가 17일 중국 정부로부터 국가최고과학기술상을 수상했다. 중국 정부는 과학자에게는 사상도, 당성()도 묻지 않는다며 외국에서 공부한 과학기술인력을 끌어들였다.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 독특한 민족이지만 중국인도 유대인 못지않은 것 같다. 미국의 한국인 이공계 박사 가운데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율은 73.9%라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 결과는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