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에는 영어와 일본어, 한자식 표현 등이 마구 뒤섞여 있어요. 남녘보다 북녘의 말이 원래의 우리말에 가깝습니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한 언어를 연구해온 호주 국적의 박기석 김일성종합대 언어학 박사(56사진)가 북한의 언어 동향을 평양 여행기에 녹여 소개한 책 JS-156(글누림)을 최근 펴냈다. JS-156은 북한 평양과 중국 선양을 오가는 고려항공의 비행기 편명. 책은 현재 북녘에서 쓰이는 입말과 글말을 노동신문 기사와 북한 TV 연속극 대사, 노랫말, 구호 등을 통해 소개했다.
최근엔 평양에 공사가 많습니다. 한 공사장에 평양시를 더욱 훌륭하게 일떠세우는데,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자라는 구호가 있었어요. 기운차게 썩 일어나게 하다는 뜻의 일떠세우다는 한국에선 잘 쓰이지 않죠. 하지만 북한에선 건설하다란 말 대신 자주 쓰입니다. 외국에 사는 저로선 이런 우리식 표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는 젤리를 단묵, 다이빙을 물에 뛰어들기, 혈안이 되어를 피눈이 되어, 이산가족을 흩어진 가족이라고 하는 등 북한말은 외래어를 최대한 우리말로 바꿔 표현한다고 말했다.
충북 보은 출신인 박 박사는 1994년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갔다. 2004년 관광차 평양을 방문했고, 우리말의 순수성이 남아 있는 북한말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호주에서 교육학박사 과정을 마친 그는 그해 김일성종합대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2007년 9월 북한 문화어와 한국 표준어를 비교 연구한 민족어의 통일적 발전을 위한 토대에 대한 연구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일성종합대 정문 근처에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글이 붙어 있어요. 세계를 지향하더라도 자기 것은 버리지 말자는 거죠. 이념을 떠나 북녘 말의 좋은 점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박 박사는 10월 1일 김일성종합대 개교 65주년을 기념해 19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10일 평양을 방문한다. 그는 남한 학자들과 함께 방북하고 싶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이 심각한 상황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더라도 학문적 교류는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시했다.
이지dms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