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나라라는 말이었다. 한국이라고 하지 않았다. 18일 기자들과 만났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를 바깥사람이라고 불렀다. 국적은 미국이었지만 마음은 한국에 두고 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장관 직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니까 모든 것을 처리하고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했다.
사실 김 후보자의 삶은 한국에 진저리를 낼 법한 것이었다. 다섯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그는 자신을 방치하다시피 한 아버지의 손에 컸다. 부권()을 우선하는 한국의 관행 탓이었다. 미국에 이민 가서는 정부 보조를 받는 집에서 아버지의 방치하에 자라야 했다. 그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생활을 바닥까지 쳤다. 자살까지 고민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를 일으킨 건 지하실을 내주며 학업을 이어가라고 격려해준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었다. 한국에서 건너간 인재에게 미국 대학은 장학금을 줬고, 그는 기꺼이 미국 사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미군에 자원 입대했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할 정도였지만 그는 계속해서 태어난 조국을 바라봤다.
그는 1998년 루슨트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 유리시스템스를 10억 달러에 매각한 이후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을 찾아 강연을 하고 언론 인터뷰도 했다. 2009년에는 벨연구소 사장으로서 벨연구소 서울연구소 설립을 이끌었고, 지난해에는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광통신기술 관련 업무제휴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한국에 도움이 될 일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개인적인 관심도 이어졌다. 2004년 스탠퍼드대에 한국학 석좌교수 직을 신설하기 위해 200만 달러를 기부했고, 외환위기 직후 1998년에는 어려움을 겪는 조흥은행에 2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하지만 이 제안은 정부의 금융권 회생계획 등 여러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불발된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의 한반도 핵 관리정책인 페리 프로세스를 입안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과도 막역한 사이다. 애초에 유리시스템스가 군사용 통신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전 국방장관을 이사로 영입한 것이지만 이후에도 그는 페리 전 장관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2004년 스탠퍼드대 한국학 석좌교수 자리도 페리 전 장관의 이름을 따 만들었으며 2007년에는 페리 전 장관과 함께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가 스스로 밝힌 대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얻는다면 미국 정부에 국적 포기세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적 포기세란 미국 정부가 탈세 등의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고액 소득자의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해 국적 포기 시점에 모든 재산을 처분한 것으로 간주해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김 후보자의 재산은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그가 국적을 포기하면 미국 정부에 낼 세금만 1000억 원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그럼에도 김 후보자는 나라를 전체적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하겠다는 당선인의 뜻이 아주 강해 굉장히 감명 깊었다며 미국 국적을 포기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상훈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