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 달 고위급 인사의 일본 방문을 추진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일 접근 방향을 전환할 방침인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일 정상회담을 빼고는 일본과 어떤 대화든 다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과의 대화에 문을 닫았던 정부가 이젠 공세적인 대일 외교에 나서겠다는 방향 전환을 예고한 것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일본이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기조는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정상회담만은 역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는 뜻이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외교부는 조태용 제1차관이 한일 차관급 전략대화를 갖기 위해 다음 달 초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는 의사를 전하고 일본 측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 측이 개각 등을 이유로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조 차관의 방일은 추석 이후에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한일 차관급 전략대화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해 1월에 일본에서 열린 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조 차관은 사이키 아키타카() 외무성 사무차관 등 일본 정부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 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한일 관계 정상화 문제 등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오랜 침묵을 깨고 먼저 일본에 고위급 대화와 방일을 제안한 기조 변화의 출발점은 한일 협력에 무게를 둔 박근혜 대통령의 815광복절 경축사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이후 고위급 대화를 비롯한 한일 대화 통로 확대 방안을 검토해왔다.
이런 방향 전환의 배경으로는 한일 대화 중단의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밝히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한일 대화를 막고 있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 이런 프레임을 깨기 위해 일본과 다양한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일 외교당국의 북-미 중동국장이 만났고, 문화국장 간 협의가 예정돼 있으며 경제 부처 간 고위급 대화를 검토하는 것도 이런 접근법에 따른 것이다.
관건은 역시 군 위안부와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도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정부는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매달리는 일본 정부도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에 고위급 특사를 보내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한계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중일 정상회담 개최 기류가 있고, 미국의 한일 관계 개선 압박이 커지면서 정부가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