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특정 언론 때리기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아베 정권의 표적은 일본의 대표적 진보 언론으로 꼽히는 아사히신문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0일자 조간에서 에다노 유키오() 민주당 간사장의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진 것과 관련해 아베 총리가 측근과 식사자리에서 이걸로 공격을 그만둬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내각의 각료들이 연일 정치자금 문제로 홍역을 치르는 가운데 야당 간사장도 같은 문제가 적발된 만큼 덮고 넘어가자는 취지로 풀이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 발언은 총리와 식사하던 측근이 전달한 것으로 산케이, 요미우리,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주요 신문이 모두 보도했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사히신문만 지목하며 날조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권을 타도하는 것을 사시로 하고 있다고 과거 주필이 말했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에도 나는 공격을 그만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불이 안 난 곳에 불을 지르고 있다. 날조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고 거듭 비판했다.
아베 총리는 2월 특정비밀보호법 강행 처리와 관련해 언론 비판이 이어졌을 때도 아사히가 아베 정권 타도를 사시로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사히신문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일국의 총리가 특정 언론을 표적으로 감정적인 비판을 계속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마이니치신문은 2일자 사설에서 욱해서 언론을 비판하는 총리가 내정, 외교 등 여러 과제에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라고 우려했다.
아베 총리의 아사히신문 적개심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청산의 시각차 때문이다. 개인적 원한이 깔렸다는 말도 나온다. 일본의 한 원로 언론인은 아베 총리는 자신이 존경하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밀어붙일 때 기시 타도에 나섰던 세력의 중심에 아사히신문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양측의 격돌은 2005년 첨예해졌다. 아사히신문은 그해 1월 14일 아베 총리가 2001년 NHK에 압력을 넣어 위안부 특집방송 일부분을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즉각 날조라고 주장하며 (멸종된) 매머드와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이라며 아사히신문을 저주했다.
총리가 특정 언론 공격의 선봉에 서자 우파 언론과 우익들은 대놓고 아사히신문을 매국노와 국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특히 일본 시사주간지들은 위안부 관련 기사를 썼던 전 아사히신문 기자들에 대한 테러를 부추기듯 실명까지 보도했다. 최근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 언론인이 몸담고 있는 대학에 백색가루가 전달되고 폭탄 테러 위협이 벌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