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싸울 국가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홀로 남겨져 나라를 지키고 있다.”
러시아 지상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포위한 25일(현지 시간) 자정.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대국민 영상 연설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카키색 티셔츠를 입고 면도를 못 해 수척한 얼굴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늘 유럽 27개 국가에 직접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우리는 러시아도,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나토는 전날 우크라이나 파병 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파병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직후 자신이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문을 의식한 듯 “나는 키예프 정부 구역에 머물고 있다”며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적국(敵國)이 나를 ‘제1표적’으로 삼고 있다. 러시아는 국가 수장을 제거해 정치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우크라이나 현대사 최대 위기’에 직면한 코미디언 출신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번도 리허설해 보지 못한’ 전시(戰時) 대통령 역을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2015년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반부패 캠페인으로 대통령이 되는 교사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고 그 여세로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정부 요직을 자신의 코미디스튜디오 출신으로 채워 위기 극복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냈다.
마리야 졸키나 우크라이나 정치평론가는 NYT에 “그는 러시아와 싸울 의지도 없었고, 전시 상황에 준비된 대통령도 아니었다”며 “다만 러시아군이 자신을 표적으로 삼았음을 알고는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