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귀가 달린 후드 상의를 입은 남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왼손은 얼굴 반쪽을 가렸고, 오른손은 안경을 들었다. 왼팔로는 얼굴 형상이 달린 지팡이를 안았다. 옷은 겨자색과 붉은색의 이중 색이고 머리에 쓴 후드 중앙에는 공룡처럼 돌기가 달렸다. 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의 남자는 누구고 그는 왜 이리 웃고 있는 걸까?
이 그림의 제목은 ‘웃는 바보’(1500년경·사진), 서명은 없지만 15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화가 야코프 코르넬리스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만 보면 지능이 떨어지는 사내를 그린 것 같지만 차림새는 광대 복장이다. 바보 흉내를 내며 관객을 웃기는 광대인 것이다. 왼팔에 낀 나무 지팡이는 ‘마로테(Marotte)’라는 소품용 막대기로 끝에 바보의 머리가 조각돼 있다. 아마도 관객들을 즐겁게 할 용도로 만들어졌을 테다. 허공에 휘두르기도 하고 바닥을 두드려 주의를 집중시키기도 하고 특정인을 쿡쿡 찌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오른손에 든 안경도 유리알이 없어 장식용 소품으로 보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얼굴을 가린 손과 그의 웃음이다. 일반적으로 너무 놀랍거나 끔찍하거나 민망한 장면을 목격하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게 된다. 호기심에 손가락 사이로 엿볼 수는 있다. 한데 이 광대는 왼손으로 얼굴 반만 가린 채 정면을 응시하며 대놓고 웃고 있다.
네덜란드 속담에서 ‘손가락 사이로 본다’는 건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을 허용하거나 보고도 못 본 척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쩌면 그림 속 남자의 웃음은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상황에서 터져 나온 자조일 수 있다.
바보의 웃음은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행복과 슬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헛웃음은 세속적 욕망의 추구가 헛된 것임을 상기시킨다. 화가는 바보처럼 껄껄 웃다 보면 분노와 슬픔, 절망도 다 지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