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하얀 박스 ‘지재권’으로 빼주세요.”
19일 오후 2시 반 경기 평택시 평택직할세관 특송통관장 안. 스피커에서 말이 흘러나오자 중국 해외 직구(직접구매) 물품들을 실어 나르던 6번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다. 엑스선 검사에서 지식재산권 위반, 즉 ‘짝퉁’ 의심 물건이 발견됐다는 알림이었다.
이내 한 직원이 지목된 상자를 집더니 빨간 매직으로 죽 그어 옆에 놓인 카트로 옮겼다. 이 카트 뒤로는 성인 여성 키만큼 물건이 쌓인 카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물건들엔 하나같이 통관 보류를 뜻하는 빨간 매직 표시가 그어졌다.
같은 시간 평택세관 특송통관장 2층 엑스선 판독실에선 7명의 세관 직원이 각자 앞에 놓인 엑스선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컨베이어 한 대를 맡아 통관 검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때 6번 컨베이어 담당 직원의 모니터에 뜬 건 금속 ‘디올’ 로고가 박힌 가방. 원래 수백만 원에 달하는 명품 백이지만 세관신고서에 적힌 가격은 단돈 5만 원이었다. 해당 물건이 카트에 담기는 걸 확인한 직원은 앞에 놓인 종이에 송장번호를 적은 뒤 ‘지재권’이라는 글자를 덧붙였다. 책상에는 이런 짝퉁 의심 등 물품 목록이 적힌 종이가 쌓여 있었다.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 가성비를 내세운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에 이들 플랫폼에서 파는 짝퉁·유해 물품 유입도 덩달아 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평택세관을 거친 중국발 직구 물품은 4000만 개에 육박한다. 3년 새 3배로 폭증한 것이다. 하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중국 직구 물량에 비해 세관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로 반입되는 중국 직구품의 44.8%가 들어오는 평택세관에선 직원 한 사람이 하루에 1만5000건의 통관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날 방문한 평택세관 특송통관장에는 1000평 규모 창고 곳곳에 택배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창고 바깥에는 해외에서 직구로 들어온 상품을 실은 화물차가 줄지어 서 있었고, 여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이 7대의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통관장으로 쉼 없이 밀려 들어왔다.
평택세관에 도착하는 직구 상품은 모두 중국에서 온다. 2020년만 해도 평택세관에는 직구 물품 1326만3000건이 들어왔는데 중국발 직구가 급증하면서 지난해에는 3975만2000건까지 치솟았다. 3년간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 기간 평택세관의 직원 수도 8명에서 27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통관 건수(1만5000건)는 다른 세관보다 3배 이상 많다. 이에 평택세관 직원들은 지난해부터 5개 조가 돌아가며 24시간 근무하고 있다.
● 초단위 검사로 짝퉁 막기 어려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서 들어온 택배 하나를 살펴보는데 단 수초 남짓만 주어진다. 이날 평택세관 엑스선 판독실에는 7명의 직원이 각각 4개의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하단 2개의 모니터에는 각각 수평과 수직 방향에서 찍은 엑스선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상단 왼쪽 모니터에는 현재 엑스선을 통과하는 물건의 품목·가격 등 세관신고 정보가 실시간으로 떴다. 나머지 모니터에는 컨베이어 벨트 폐쇄회로(CC)TV 영상이 나왔다.
직원들은 엑스선에 줄지어 들어오는 택배를 신고정보와 비교하면서 짝퉁 등이 의심되는 물건을 걸러낸다. 몇만 원대 제품으로 신고됐는데 명품 로고가 보이거나, ‘의류’라고 신고된 택배 상자 안에 전자기기가 보이면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살펴보는 식이다.
하나의 물건이 엑스선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초. 하지만 엑스선 화면에 여러 개의 물건이 동시에 잡히는 데다, 4개의 모니터를 번갈아 봐야 하는 만큼 물건 하나를 살펴보는 데는 단 몇 초만이 허용된다. 엑스선을 문제없이 통과한 상품들은 국내 배송이 시작돼 2∼3일 안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이 마지막 검사 단계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평택세관에서 적발된 짝퉁은 8230건으로 전체 세관에서 적발된 중국 짝퉁(6만5000건)의 12.7%에 불과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중국 물건의 절반이 평택세관에 들어오는데도 적발률은 10%대에 그친다. 쏟아지는 물량에 비해 인력이 부족해 과부하가 걸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관세청, 알리와 통관 효율화 협의
짝퉁 등을 숨기는 방식이 교묘해지고 있는 점도 단속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평택세관에는 국내 소비자가 쿠팡을 통해 중국에서 직구한 20만볼트 전자충격기가 ‘장난감’으로 신고돼 들어왔다. 국내법은 경찰의 허가가 있다는 조건을 붙여 최대 6만볼트의 전자충격기까지 소지할 수 있도록 한다. 허용치의 3배를 초과한 것이다.
‘샤넬’ 로고에 동그란 금속을 덧댄 샤넬 짝퉁 가방도 적발됐다. 엑스선 검사 적발을 피하기 위해 로고를 감춰 들어온 것이다.
알리·테무 직구가 급증하며 통관에 병목 현상이 생기자 관세청은 알리와 통관을 효율화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알리가 한국 고객에게 받은 주문정보를 넘겨주면 물건이 들어오기 전에 의심 물건을 적발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가로 관세청은 알리를 ‘통관 우대 업체’로 지정해 통관 인센티브를 줄 예정이다. 관세청은 현재 쿠팡, 11번가와 이런 협약을 마쳤고 알리를 비롯해 네이버와도 이런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현재 주어지는 통관 인센티브는 수입 신고를 30분 안에 자동으로 수리되도록 우대해주는 것이다. 관세청은 향후 수입 신고 이후 검사 단계에서도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통관이 2∼3일 빨라지도록 우대해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알리 물건 통관에 속도가 붙게 되면 국내 유통업계 침투하고 있는 알리 공습이 더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평택=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