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이제 90세입니다. 안 많습니다.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90)가 9일 대구 남구 프린스호텔 별관에서 열린 구순 잔치에서 밝힌 소회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 할머니는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인 것 같다”며 “세계 여성의 평화를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최근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신일본제철이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을 두고 이 할머니는 “마땅히 해야 할 배상을 안 한 그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이라도 배상 판결을 받게 돼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도 언젠가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과하도록 나도 힘쓸 테니 여러분도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등 5개 단체가 마련한 이 할머니의 구순 잔치에는 200여 명이 참석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돕는 시민단체 회원 10여 명도 행사장을 찾았다.
참석자들은 그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온 이 할머니의 활동에 박수를 보내며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을 때까지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일본에서 위안부 생존자들의 활동을 돕고 있는 노부카와 미쓰코 씨(70·여)는 “이 할머니가 1994년 도쿄에 왔을 때 인연을 맺고, 위안부 문제도 알게 됐다”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미향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정의기억연대 상임대표는 “이 할머니가 199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처음 외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며 “세계적인 여성인권운동가가 된 이 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인 이 할머니는 1928년 12월 13일 대구 고성동에서 태어났다. 16세 때인 1944년 일본군에 강제 동원돼 대만으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했고, 1993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매주 서울의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20년 넘게 참석해 왔다. 2007년 7월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앞두고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피해를 증언하는 등 세계를 돌며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대구=박광일 light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