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군납유류 입찰 담합 혐의로 5개 정유사에 대해 190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불과 4개월여만에 3분의 1 이상 대폭 깎아주었다. 공정위는 이같은 봐주기 심결을 내린 이유로 정유사의 현실적인 부담능려과 임원 6명 법인 2사를 추가고발된 사정등을 배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심결의 36.3%나 경감해준 것은 법률이 허용한 재량권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 것이다. 공정위는 원심결 당시 정유사들이 군납유류 입찰에 참가하면서 사전에 임원들이 만나 입찰 가격을 답합한 것은 죄질이 나쁜 하드코어 카르텔에 해당한다며 사상 최고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여론이 비등한 사건 초기에는 큰 칼을 휘둘렀다가 잊혀질만하면 슬그머니 봐주는 식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는 위반행위의 내용 정도 기간 회수, 위반행위로 인해 취득한 이익의 규모 등을 참작해 결정하도록 법률에 규정돼 있다. 그리고 과징금 부과에 관한 세부기준을 고시로 규정해놓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1901억원의 과징금에서 690억원이나 깎아준 것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가 고무줄 방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공정위는 검찰의 요구에 따라 5개 정유사의 입찰담당 임원 6명을 고발한 사정을 참작했다고 하지만 뿐만 아니라 원심결이 임원과 법인을 고발하지 않은 원심결부터 잘못된 것일 뿐더러 행정적 제재와 형사처벌은 엄연히 성격이 다른 것이다. 최근 경기후퇴로 인한 정유사의 현실적인 부담능력을 감안했다고 하나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올려받겠다는 말인가. 이것은 과징금 분납 등의 조치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근본적으로 군납유류 답합비리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방예산을 훔친 범죄이다. 죄질도 나빴다. 이들 업체는 순번을 돌아가며 낙찰업체와 들러리 업체로 역할 분담을 했고 특해 작년에는 가격을 올리기 위해 계속 고가로 응찰해 9차례나 유찰시키기도 했다. 특히 공정위는 군납비리에 이어 국내 소비자가격 답합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밝혀놓고 얼마가지 않아 흐지부지 돼버렸다.
공정위의 조사가 기업의 건전한 경제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로 가혹해서는 안되지만 국민의 세금을 훔치고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경제검찰 이라는 공정위의 조사 활동과 과징금 부과 심결이 과연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