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 국군 장병을 독자로 하는 국방일보가 북한의 혁명가극 피바다를 명작이라며 소개한 일은 단순한 실수나 일과성 해프닝이라고 보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중대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해이해진 군 기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국방일보 3월22일자는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한 피바다 1500회 공연 소식을 전하면서 주체사상을 구현한 사상적 내용의 심오성과 혁명적 대작의 참다운 품격을 완벽하게 갖춘 명작이라고 소개했다. 김주석 창작 지도한 혁명연극 주체사상 구현 완벽한 명작 이라는 부제도 달았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북한에서 혁명가극은 주체사상과 적화통일 이념을 선전 선동하는 주요 수단이며, 피바다 는 꽃파는 처녀 당의 참된 딸 금강산의 노래 등 북한의 5대 혁명가극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전방에서 이 기사를 읽은 우리 군 장병들이 가졌을 혼란감을 어쩔 것인가.
국방부 산하기관인 국방홍보원이 발행하는 국방일보는 1964년 11월16일 창간돼 매일 12만5000부씩 찍는 신문이다. 국방일보 인터넷 사이트에 따르면 장병 계도 및 대국민 홍보 등을 주기능으로 하며 분대당 2부씩 배포된다고 소개돼 있다. 김동신() 국방장관은 문제의 기사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국내 언론의 기사를 전재한 것 이라고 변명했지만, 명실공히 대한민국 군의 공식 대변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그렇지 않아도 국가안보가 경시되는 듯한 풍조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남북대화에 연연해 북한의 신경을 가급적 건드리지 않으려는 데서 빚어진 위험한 풍조가 아닌가. 비근한 예로 임동원() 통일부장관은 10일 국회 답변에서 주적()이라는 개념을 쓰는 나라가 없으며 전쟁관계에 있을 때 쓰는 말이 주적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북정책 당국자의 이런 말은 군의 안보의식을 해이하게 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정세는 급변하고 있으며 휴전선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밀집된 지역이다. 이럴 때일수록 군의 확고한 안보태세는 중요하다. 남북 화해협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남북대화도 굳건한 안보가 뒷받침될 때 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국방부는 이번 일을 단순한 실수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게재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고 안보태세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