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유엔 인권위원회 창설 이후 줄곧 이사국 자리를 유지했던 미국이 3일 선거에서 처음으로 이사국 자격을 상실함으로써 국제사회가 미국을 왕따시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유엔의 외교관들은 미국이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유엔기후변화 협약에 대한 교토의정서를 파기하고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을 위해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초강대국으로서의 지도력을 무시하고 있는 데 대한 응징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 인권위의 이사국 수는 53개국이다. 임기는 3년으로 전체 이사국의 3분의 1이 매년 ECOSOC의 54개 이사국의 투표로 새로 선출되며 재선도 가능하다.
미국은 이날 서유럽 및 북미지역에 할당된 이사국 3석을 놓고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과 득표전을 펼쳤다. ECOSOC 54개 이사국이 지역별로 3개국씩 적어내는 방식의 투표에서 미국은 29표밖에 얻지 못해 52표를 얻은 프랑스는 물론 오스트리아(41표)와 스웨덴(32표)에도 밀리는 수모를 당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올해 말로 54년 동안 유지해온 인권위 이사국 자리를 내줘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도 한 미국은 ECOSOC 54개 이사국 중 하나로 인권위 창설 이후 줄곧 이사국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이사국 자격 상실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상원 인준을 받지 못한 존 네그로폰테 유엔주재 미국대사 임명자를 대신해 대사직을 수행해 온 제임스 커닝햄 미국 대리대사는 투표 결과에 매우 실망스럽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유엔 외교관들은 이번 투표 결과는 미국의 인권정책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미국이 보여준 오만한 행태에 대해 국제사회가 불만을 터뜨린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한편 아시아지역에 배당된 3개 이사국에는 바레인 한국 파키스탄이 선출됐다. 한국은 이날 표결에서 총 42표를 얻어 재선출됨으로써 93년 이후 12년 연속 인권위 이사국으로 활동하게 됐다.
신치영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