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H씨(47). 그는 푸르덴셜생명에 종신보험을 들었고 씨티은행에 1억원을 맡겨 씨티골드회원 자격을 갖고 있다. 당장 돈이 필요 없어 대출 받을 필요는 없지만 혹시 돈이 필요할 때는 HSBC에서 부동산담보대출을 받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H씨는 5년 전만해도 보험은 삼성생명에 가입했고 예금과 대출은 상업은행과 거래했다.
외국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6일 금융계에 따르면 외국은행의 총자산 점유율은 2000년 말 현재 7.6%로 99년(6.4%)보다 1.2%포인트 높아졌다. 은행의 예금 비중은 1.1%에서 1.7%로, 생명보험회사의 수입보험료 비중은 5.0%에서 5.5%로 각각 높아졌다.
씨티은행 서울지점은 4월4일 정기예금금리를 연6.0%에서 6.3%로 0.3%포인트 올렸다. 국민 주택은행과 농협 등 국내은행들이 정기예금금리를 경쟁적으로 내리던 것과 정반대의 결정이었다.
HSBC은행은 2월19일 주택담보대출금리를 연8.5%에서 7.9%로 0.6%포인트 인하하면서 기존대출금에 대해서도 담보설정비를 면제해주고 있다. HSBC에 이어 주택은행을 비롯한 은행과 삼성생명 등 보험사들도 담보설정비를 면제하고 금리도 내리고 있다. 푸르덴셜생명은 국내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던 종신보험을 선보여 생명보험의 주력상품으로 정착시켰다.
이처럼 외국 금융기관들이 점유율을 높이고 영향력을 키우는 비결은 한발 앞서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한마디로 선진금융기법을 한국시장에 적용, 아직 고객서비스에 취약한 국내 금융기관을 따돌리고 있는 것이다.외국 금융기관은 또 한정된 자금을 특정부문에 집중시킴으로써 영향력을 최대화하고 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주식 중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3월말 현재 63조62억원으로 전체의 30.2%에 이른다.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61.62%에 이르며 주택(62.40%) 신한(50.36%) 한미(66.0%) 등 주요 우량은행도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어섰다. 종합주가지수에 영향력이 높은 삼성전자(58.3%) SK텔레콤(48.95%) 현대자동차(52.24%)의 지분도 절반을 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사면 종합주가가 오르고, 팔면 하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엄격한 내부통제로 금융사고와 부실채권을 방지함으로써 깨끗하고 우량하다는 이미지도 외국계금융기관의 도약에 한몫한다.
씨티은행 서울지점의 부실채권 비율은 작년 말 현재 0.5%를 밑돌고 있다.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10%를 넘고 국민 주택 한미은행 등 우량은행의 부실채권비율도 5%를 넘는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한빛은행에서 500억원 이상의 금융사고가 났지만 외국 금융기관에서 이런 사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씨티은행과 DBS는 외환카드 인수를 추진 중이어서 외국인의 입김은 카드업계로 확산될 전망이다. 서울은행과 대한생명 등도 올해 중 해외매각을 추진중이며 공적자금이 투입된 조흥 한빛은행과 정부지분이 있는 국민 주택은행 등의 지분매각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외국계 은행 보험 증권 카드와 거래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홍찬선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