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부장관의 이번 서울 방문으로 미 행정부가 곧 발표할 대북()정책의 큰 그림이 드러났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고 북-미(-) 제네바합의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북한과의 대화도 곧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이처럼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큰 가닥을 잡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미티지 부장관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엄격한 상호주의 적용과 철저한 검증 원칙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책변화를 시사하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가 여전히 북한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고 북한이 그 같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앞으로 있게 될 북-미간 대화는 상당한 마찰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지금 시점에서 북-미관계에 대한 낙관이나 그에 따른 남북한 관계의 급진전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때이른 감이 없지 않다.
아미티지 부장관이 들고 온 미사일방어(MD) 계획 보따리도 우리에게는 상당한 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김대통령은 MD에 대해 지지도, 거부도 하지 않는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의 압박 강도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다. 특히 아미티지 부장관은 대량 살상무기의 비확산(non-proliferation), 대량살상무기의 대()확산(counter-proliferation), MD 그리고 미국의 핵무기감축이라는 미국의 새로운 세계 전략 틀을 제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의 MD계획에 대한 한반도 주변국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이미 표면화된 상태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여기에다 대량살상무기의 반확산이라는 새 불씨를 남겨 놓은 것이다.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정책은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에 대한 군사력 동원까지 포함하는 공세적 개념이라고 하니 북한이나 중국 등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한 일이다.
더구나 미국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에 대비하기 위해 동해에 이지스함 2척을 배치할 계획이라는 외신보도를 아미티지 부장관은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고 서울을 떠났다. 당사국인 북한의 반발은 짐작할 만하다.
아미티지 부장관의 방한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시켜준 반면 엄청난 외교적 짐도 남겨 놓았다. 그 부담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앞으로 한국외교의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