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달밤은 한마디로 웃자고 만든 영화다. 그래서 진지하게 본다면 다소 싱거울 수도 있다.
고교 짱에서 교사가 된 기동(차승원)과 모범생에서 조직 폭력배의 참모가 된 영준(이성재), 두 동창생의 인생유전()을 담았다.
영화는 10년 전 경주의 달밤에서 벌어진 집단 패싸움을 두 주인공의 인생이 뒤바뀌는 사건으로 설정했다. 전교생이 거의 나선 패싸움을 피한 겁쟁이는 이 사건 뒤 폭력배가 되고, 그 날의 주먹 영웅은 공부에 매달려 교편을 잡게 되는 것이다.
우연히 경주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예상을 벗어난 상대방의 삶을 보면서 복잡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여기에 왈가닥 형의 주란(김혜수)을 둘러싼 감정의 줄다리기와, 주란의 남동생으로 건달이 되겠다는 주섭(이종수) 등 철부지 고교생들의 해프닝이 겹쳐진다.
이 작품의 유일한 강점이자 무서운 매력포인트는 역시 웃음. 그 코드는 김상진 감독이 99년 연출한 주유소 습격사건(서울 관객기준 96만 명)의 연장선상에 있다. 주유소라는 한정된 공간이 경주로 넓혀지고 과거와의 만남이 잦아졌을 뿐 큰 차이는 없다.
이 작품은 액션 장면조차 극중 웃음을 만들어내는 재료로 존재한다.
신라의 달밤도 영화 친구처럼 폭력 세계의 암투를 다뤘지만 그 색깔은 확실하게 다르다. 친구가 찔리면 피가 나오는 진검 승부같은 접근 방식인 반면 신라의 달밤은 피 대신 웃음이 튀어나온다.
김 감독이 웃음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은 예측을 조금씩 벗어나는 작은 반전()과 좀 황당하게 느껴지는 만화적 상상력이다. 상대를 향해 멋진 폼으로 붕 날아가던 기동의 몸이 폭력배들의 엉뚱한 대화 속에 바닥으로 털썩 털어진다. 영준과 대결하는 경주 지역의 폭력배 두목은 큰소리치다 계속 인질로 잡히고, 권위를 상징하는 경찰의 배지는 제기처럼 이러저리 차인다.
영화는 웃음 속에 기동과 영준의 우정을 종반부에 끼워 넣지만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지는 않다. 초반부만 보면 결말이 뻔하니까.
하지만 김 감독은 웃기는 영화를 만들려고 작정했고, 적어도 그 목표는 충분하게 달성됐다. 극중 말과 몸으로 좌충우돌하는 기동 역을 맡은 차승원의 연기는 웃음의 원천이다. 15세 이상 관람 가. 23일 개봉.
김갑식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