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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명문사학의 사회적 책임

Posted July. 11, 200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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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립대학이 2002년부터 기여입학우대제(이하 기여입학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우리 사회는 1990년대에 겪었던 사회적 홍역을 다시 치르고 있다. 대학의 재정난은 대학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의 약화 요인이라는 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정난 타개가 시급하다 해도 기여입학제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요즘 기여입학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현 대학교육 시스템이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반성은 접어두고, 단순히 미국 제도의 성공적인 측면만을 부각하며 국민을 현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분들께 명문대 입학이 한국인에게 갖는 의미부터 묻고 싶다. 학벌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 합격은 인생에 있어서 절반의 성공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은 대학입시 경쟁이 한국처럼 치열하지도 않고 학벌주의가 심각하지도 않다. 미국과 한국은 엄연히 다른데도 왜 자꾸 미국의 상황을 거론하는가.

사회적 지위나 부의 세습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헌법이 보장한 교육기회 균등을 훼손하면서까지 부자 한 명의 기여입학금으로 열 명의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발상과 명분이 과연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는지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교육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교육이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를 손상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국내의 교육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교육이민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붙잡아두려면 소위 명문대부터 교육의 기본 틀을 바꾸는 창의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 기여입학제 도입을 역설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대학교육은 한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교육프로그램은 부실한데, 재정만 늘린다고 대학교육의 혁신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더욱이 오늘날 사학이 겪고 있는 재정 위기는 상당부분 스스로 초래한 일이다. 재정난을 겪으면서 분교 정책은 왜 그렇게 엄청난 규모로 실행했는가. 또 시설투자와 교직원에 대한 인건비가 국립대보다 훨씬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사학이 고급인재 양성의 80% 이상을 담당해 왔기에, 사학에 대한 국고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그런데 요즈음 명문(?)이라는 구시대적 이름을 앞세워 교육인적자원부와 힘겨루기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 명문사학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명문사학도 교육혁신과 대학경영에 대한 기본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효율적이고 투명한 대학경영, 창의적인 교육프로그램의 운영을 통해 해외로 나가는 유학이 아니라 외국학생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초일류 대학으로 변모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명문사학이 뼈를 깎는 자기개혁을 주도하면서 정말로 기여입학제를 통한 대학재정의 확충이 불가피하다면, 그때 가서 그 문제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 그게 바로 국가와 국민에 대한 명문사학의 사회적 책임이다.

최석원(공주대 교수지질환경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