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뒤를 이어 국제올림픽 운동을 이끌어갈 제8대 IOC 위원장 선거가 자크 로게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IOC가 출범한 1894년 이후 백인들이 장악해온 위원장 자리에 동양인 최초로 김운용 대한체육회장 겸 IOC집행위원이 출마해 선전함으로써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특히 2008년 올림픽 개최지가 중국 베이징()으로 결정된 것이 앵글로 색슨계 IOC 위원들을 단합시키는 등 불리한 여건에서도 2차 투표까지 갔다는 것은 IOC 내에서 김회장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김회장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도 받지 못했고 선수 출신이 아니라는 등의 약점 때문에 체육계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IOC 위원들의 후광을 업은 로게 위원과 대권을 다퉜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비록 사마란치 위원장의 막판 개입으로 위원장 자리를 내줬지만 한국 스포츠외교의 위상을 한 차원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IOC 위원장 선거는 계속된다. 또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나 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회(ANOC),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 선거 등 세계 스포츠계의 수장 자리는 많다. 특히 204개 회원국을 거느린 FIFA 회장 자리는 세계 대통령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자리이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의 FIFA 회장 선거 후보 진출과 선전도 기대해 볼 만하다.
작년 말 현재 국제스포츠기구와 아시아스포츠기구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임원은 회장단, 집행위원회, 분과위원회를 모두 합쳐 137명에 불과하다. 회장단의 임원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기구가 상당수이고 집행위, 분과위에서 활동하는 임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활동 중인 임원도 어학이나 국제체육기구에서의 활동 경험 부족으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IOC 위원장 선거를 마치며 한국 체육계는 제2, 제3의 IOC 위원장 후보를 배출해 내고 앞으로 다가올 FIFA 회장 선거 등에서 다른 걸출한 후보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선거를 개인적 노력만으로 치르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공부하면서 운동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세계 스포츠기구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임원들은 대부분 선수 출신이면서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다. 로게 차기 IOC 위원장도 정형외과의사 출신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스포츠맨은 학식과 신체적 균형미를 갖춘 신사로 통하며 사회에 진출해서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한국의 운동선수는 진정한 스포츠맨도, 신사도 아니다. 승리만을 쫓는 풍토 때문이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우수한 스포츠 외교 인력이 양성될 수 없다. 선수가 은퇴한 뒤 스포츠계에서 주도적 관리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또한 어려서부터 스포츠의 덕목을 배우도록 학교체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 등의 메달리스트들이 국제체육기구에서 일할 수 있도록 소양과 자질을 배양시켜줘야 한다. 이들은 메달리스트라는 강점 때문에 국제체육기구에 진출하기 쉽고 스포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 적응도 빠를 것이다. 여기에 국가 차원의 스포츠 외교 전문인력 양성시스템을 만들어 미래의 인력을 체계적으로 길러내야 한다. 대학은 스포츠 외교학과의 신설을 확대하고 국제체육기구에서 필요한 실무를 교육하고 스포츠 외교학회도 활발하게 활동해야 한다.
문화관광부, 대한체육회, 체육과학연구원 등 관련단체는 IOC를 비롯한 국제스포츠기구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의 스포츠 외교 인력을 파악하고 활동사항을 조사해 국내 스포츠 외교의 방향과 추진과제를 설정해야 한다. 특히 유럽 출신의 로게가 차기 IOC 위원장으로 당선된 만큼 유럽 스포츠계와의 친분관계를 다지며 그들의 스포츠 외교 역량을 배워야 한다. 또한 외교통상부 등 정부 조직과 스포츠 관련 단체들이 정보 교류와 인적 교류를 활발히 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
이용식(체육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