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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비와 가로등

Posted July. 31, 200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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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집중호우 속에서 자동차를 몰았다. 도로는 온통 물바다였고 빠르게 움직이는 윈도 브러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물살을 가르며 겨우겨우 앞으로 나가는 자동차는 곧 엔진이 꺼질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물 속에서 자동차가 서버리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 악전고투 끝에 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날 밤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 특히 물이 찬 도로에서가로등과 신호등의 누전으로 감전사 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지난밤 자동차 시동이 꺼져 물 속을 걸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할수록 끔찍했다. 한 회사원이 보름 전 겪었던 경험담이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도심 한가운데서 감전사라니. 그런데도 서울시와 경찰은 책임회피논쟁까지 벌였다. 이를 의식한 듯 이번 집중호우 속에서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아예 가로등을 켜지 않거나 중간에 끊어버렸다. 일부도로는 암흑천지로 변했고 운전자들은 어둠 속에서 갈팡질팡했다. 감전사고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지난번 집중호우 이후 관청은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이번 집중호우까지는 10여일간의 기간이 있었다. 이 기간동안 미리미리 노상전기시설의 안전을 총점검하고 필요한 곳에 누전차단기를 설치하는 등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이후에야 부랴부랴 누전점검반을 구성해 움직인 것은 이미 때를 놓친 것이다. 혹시라도 비만 오면 가로등을 끄는 나라라는 오명을 얻을까 걱정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에도 곳곳의 하수구와 유수관로 등이 막혀 전국의 많은 곳이 물바다가 됐다. 인명 및 재산피해도 잇따랐다. 큰비가 올 때면 어김없이 겪는 일이다. 다시는 그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원적인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문을 하기에도 이젠 지쳤다. 호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더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책임있는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냥 하늘만 탓하고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만 넘긴다면 언제든 물난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송영언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