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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우울한 'IMF 졸업식'

Posted August. 25, 200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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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 놓고 판을 벌이기가 쑥스러워서였을까, 이틀 전 그들만의 잔치가 청와대에서 조용히 열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빚을 몽땅 갚는 기념 파티치고는 초라하다는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나라경제가 무너져 IMF의 관리를 받기 시작하던 날의 통한을 기억할 때 3년8개월 만의 졸업식은 한강변 불꽃놀이라도 곁들여진 거국적 행사일 법도 했는데 말이다.

하기야 사상 최대의 수출 감소와 환란 이후 최악의 경제성장 속에 정부가 잔칫상 차리기 민망했을 수도 있다. 마음들이 동서남북으로 갈가리 찢겨 말 한마디 터놓고 할 수 없을 만큼 사회가 사나워진 터에 온 국민이 함께 손뼉치며 축하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과거의 교훈을 되새기고 앞날의 희망을 논해야 할 졸업파티는 청와대 한 모퉁이에서 군색하게 열렸다.

그렇다고 정부를 측은하게 볼 필요는 없다. 잊고 있었을 뿐이지 기실 정부는 이미 1999년 12월 21일 IMF졸업 잔치를 한 차례 거하게 치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IMF가 한국프로그램에 대한 이사회 점검의 종결을 선언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경제정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던 이 날, 청와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정계 재계 금융계 인사 120여명의 웃음꽃이 만발한 가운데 자축연이 벌어졌었다. 그때 참석자들이 한 말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IMF체제 극복을 위해 노력한 결과 우리나라가 기업구조개혁과 금융개혁에 성공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강봉균 당시 재정경제부장관)

구조조정을 정부차원에서 지원해 주신 데 대해 대통령께 감사 드리며 건배를 제의합니다. (대한상의회장)

참으로 뜻깊고 기쁜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노력으로 각 분야에서 IMF졸업이라는 성과를 거둔 데 대해 치하하고 감사 드립니다.(김 대통령)

과연 우리는 이 날짜로 IMF를 졸업했었나. 명색이 경제정책의 수장이란 사람이 아직도 요원한 기업구조조정과 금융개혁에 성공했다고 일찌감치 선언하던 모습은 한편의 코미디 같다.

아니나 다를까. 축배가 나눠진 지 꼭 1년 뒤 주가는 폭락하고 기업들의 연쇄도산 속에 실업자는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외국의 한 경제전문가는 경제가 다시 초라해진 원인을 이렇게 말했다. 한국경제가 또 한번 위기를 맞게 된 것은 1년 전 정부의 IMF졸업 선언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그것인데 이 지적은 여러 가지 증빙이 가능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

경제부처 관리들의 고생이 왜 없었겠는가마는 터놓고 얘기해서 99년도의 호황을 정부의 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1998년 말부터 갑자기 좋아진 세계경제가 우리한테도 훈풍을 불어준 것일 뿐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성공해 나타난 값진 성과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계속 열악한 기업과 금융기관의 수익구조가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도 그때 우리는 질적 향상보다 외형적 성장에 도취해 정부를 따라 IMF졸업을 소리 높여 축하했었다.

이처럼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서둘러 위기극복이 선언됨으로써 사회적 긴장감은 급속히 풀어졌고 공적자금에 취한 은행과 기업들은 모럴해저드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표를 겨냥한 정치논리의 정책들로 고통이 수반되는 구조조정은 이미 물 건너갔고 재연된 노사갈등은 거리를 화염병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변화를 바랐지만 정작 성취한 것은 무엇인가. 처음 IMF터널에 들어섰을 때 불안 속의 우리는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깜깜한 미래를 향해 뛰면서도 과거의 잘못된 패러다임에 대해 열심히 반성했고 다시는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새로운 체제와 제도가 기다리는 터널의 다른 쪽으로 나가지 못하고 터널 중간에서 입구쪽으로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구시대의 관행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인데 그것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정부가 선도한 일이기도 하다.

IMF졸업 제2차 축하연이 열렸지만 우리는 또다시 금모으기에 대비해 장롱속 아이들 돌반지를 챙겨가며 IMF재수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안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울한 졸업식이었다.

이규민(논설위원)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