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병리적 현상들의 이면에는 늘 학벌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학벌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당연시되는 현실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이는 지나친 과외와 사교육비 지출로 이어지고 있다. 고학력 실업자도 양산된다. 특정 대학을 중심으로 한 패거리문화도 형성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초중고교 교과서에 학벌주의 폐해를 지적하는 글을 싣기로 하는 등 학벌문화 타파 추진계획을 마련한 것은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힌 이 같은 학벌문화를 극복해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교육부는 우선 내년에 변화하는 사회 등 교재를 일선 학교에 배포하고 중고교 3개씩을 시범학교로 정해 학생 학부모에게 올바른 직업관 등에 관한 강좌를 열 계획이다. 또 제2건국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통한 의식 개혁운동을 펴고 표어도 공모하기로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학벌주의가 사라질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캠페인을 백 번 한다 해도 학벌주의가 타파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학 졸업장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작용하고 있다. 학벌 학력이 지위 상승의 중요한 요인이고 임금차별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서열화된 대학 구조는 학생들에게 상위권대에 들어가야 살아 남는다는 강박감을 심어주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도 있다. 특히 지방대의 휴학생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방대의 위기는 결국 지방의 위기로 이어지고 이는 국토의 균형 발전을 저해한다.
중요한 것은 의식과 제도다. 우선은 능력보다 간판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는 기업의 채용 승진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자면 학력 대신 업무수행능력 창의력 아이디어 등을 잴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창의력은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국가나 기업이 가장 중시해야 할 능력이다.
물론 이 같은 학벌주의 타파는 사회 발전의 기본 동력인 경쟁원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학벌 타파가 하향 평준화를 목표로 해서는 안된다.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 경쟁속에서 학벌이나 학력에 안주해서는 결코 살아 남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