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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나 말지

Posted December. 15, 200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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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의 경제관련 기사는 가끔 우리를 웃긴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펴야만 하는 저들의 속사정을 짐작할 때쯤이면 우리의 가슴은 오히려 서글픔으로 가득 찬다. 빗장 걸고 사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경제적 희생으로 귀결되는지를 북한은 잘 차단된 실험실 안에 들어가 스스로 입증하고 그 결과를 외부에 보여주는 느낌이다.

얼마 전 노동신문이 보도한 경제기사 한 토막이 그 사례다. 공장과 기업소의 전문성을 강조한 이 기사는 전문이 아닌 물건을 만들기 위해 원료와 인력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이며 반드시 당이 정해준 규격의 물건만 생산해야 한다고 했다.

생산현장에서 터득한 경험을 이용해 기능이나 성능을 개선한 신제품을 만드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북한경제가 아무리 국제경쟁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래서는 나라살림이 유지되기 어렵다. 그것이 사회주의 경제를 개선, 완성해나가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강조했지만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 원칙 때문에 지구상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것을 북한은 왜 모르는가.

전자회사인 소니가 어느 날 디지털카메라를 내놓아 코닥 같은 카메라회사를 위협하고 코닥은 컴퓨터 사진기술을 개발해 컴팩 같은 컴퓨터회사와 경쟁하고 있으며 컴퓨터회사들은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경영컨설팅회사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것(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이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한 단면이다. 북한식 주문에 따르면 소니와 코닥, 컴팩은 절대로 업종변환을 해서는 안되며 그 자리에서 경쟁력을 잃어 쓰러지든 말든 지정된 제품만 생산해야 한다.

이쯤에서 북한 당국과 우리 정부 내 해당 경제부처를 양쪽에 놓고 들여다보면 맙소사, 어쩌면 이렇게도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는지 기가 막힐 정도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사업진출을 사실상 봉쇄한 정부의 대기업 규제가 그렇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은 분명히 견제되어야 하고 그들이 선거를 앞두고 정부를 압박해 개혁정책을 완화하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 기업규제정책을 그냥 두고 재벌들에게만 조용히 있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의 초대형 자본인 야후나 라이코스는 한국 땅에서 제한 없이 인터넷사업을 펼쳐 가는데 심마니는 재벌이 투자한 기업이란 이유 때문에 온갖 제약을 받아 그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은 기막힌 일이다. 까르푸나 월마트 같은 세계적 유통업체들이 지방도시에 속속 상륙하는데 이들과 실질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국내 백화점 자본이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신규 점포를 세울 수 없다면 이는 또 어떻게 설명이 될까. 우리 기업은 내 집 안방에서 손이 묶인 채 링에 올라가 자신보다 몇 배 더 거대한 외국자본과 권투를 해야 하는 기이한 게임을 우리는 지금 관전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이나 30대그룹 지정제도 같은 기업규제가 세상 어느 나라에 있단 말인가.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이 은행돈을 긁어모아 부실기업을 키우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 궤변은 최근 가계대출만 폭증하고 기업대출이 격감해 재정경제부가 기업에 돈 좀 쓰라고 독려하는 상황과도 안 맞는 말이고 은행이 기업의 수익성을 따져 대출여부를 결정할 만큼 금융자율화가 성공했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제도를 고집하는 주장이 노동신문에 실린 북한의 촌스러운 전문화 주장과 다른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 제도들이 처음 등장했던 1987년과 지금은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당시 정부에서 그런 규제를 만든 사람들이 아직도 같은 시각을 갖고 그 자리에 붙어 앉아 있다는 점뿐이다.

디지털이 발전하고 그래서 국경과 업종, 제품간 경계가 사라진 지금 명색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한다는 정권 아래에서 아직도 규제의 권한을 즐기려는 후진적 시각의 경제관리들이 남아 있다면 그건 비극이다. 재벌의 탐욕으로 빚어진 폐해는 물론 비판의 대상이지만 과거 개발경제시대의 잣대만 갖고 눈부시게 변하는 글로벌시대의 경제를 재단하려는 정부의 후진적 시각은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개혁을 못하겠거든 개악이라도 말고 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이 정부가 할 차선의 일이다.



李圭¥¥¥敏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