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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단 청단

Posted April. 27, 20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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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홍단 청단 이야기다. 홍단이야 홍단만 나면 다른 두 사람이 먹은 패를 모두 가져오고 그 뒤 세판까지는 져도 돈을 안낸다는, 대통령 아들 3형제를 빗댄 홍()3 고스톱인줄 알겠는데 청단은 또 뭘까. 청단이 나도 남의 패를 싹쓸이할 수 있는 청와대 고스톱이란다. 온갖 비리 의혹에 줄줄이 연루된 청와대의 위력(?)을 고스톱판이라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웃어 넘기기에는 참으로 뒷맛이 고약한 고스톱 세태학이다.

성철 큰스님의 한 말씀

연전에 입적()한 성철() 큰스님을 시봉()한 원택() 스님이 출가 전 절돈 1만원(1만배)을 내놓고 큰스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은 속이지 말라였다고 한다. 몇날 며칠 온 삭신이 저리다 못해 혼절할 듯한 몸을 가누며 배()를 올리고 평생 마음에 담을 말씀 한마디를 얻고자 했는데 고작 속이지 말라라니. 꽤나 황당했었나 보다. 하나 원택 스님은 오래지 않아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큰스님 말씀의 실로 무거운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속이지 말라야말로 오늘의 어지러운 세태를 천둥처럼 때리는 큰스님의 한 말씀 아니겠는가. 속이지 않고 거짓말 않는 속세가 어디에 있겠느냐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최고권부라는 청와대와 대통령 아들들이 거짓과 불신의 표적이 되고 고스톱판에까지 올라서야 나라 체통이 말이 아니다. 더욱이 도덕적 우월성을 앞세웠던 김대중() 정부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적어도 대통령 아들들과 청와대 비리는 없었어야 한다. 며칠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은 DJ는 불행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면서 김 대통령 아들 문제는 모든 국민이 법에 따라 철저히 처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을 감옥에 보내야 했던 YS가 DJ, 당신 아들도 감옥 보내야 한다는 소리니, 아픔을 겪은 처지에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말할 것 있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양김()은 한묶음이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이 시끄러움은 양김 시대를 보내는 전환기적 진통일지 모른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1인 보스정치, 가신()이 발호하는 사적() 정치, 민주화 투쟁은 했다지만 민주주의의 내면화와는 거리가 먼 제왕적 권력, 신세지고 신세갚기를 본질로 하는 연고주의 정치,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끼리끼리 부패-이 모든 구태의 악습을 한 움큼 잘라내고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들은 정권을 잡았다고 인식했다. 그들의 민주주의 인식 수준은 그 정도에 머물렀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는 생각은 좀처럼 머릿속에 들지 않았던 게 틀림없다. 이른바 권력실세라는 인물들은 걸핏하면 어떻게 잡은 정권인데 타령을 하기가 일쑤였다. 잡았다고 생각하니 잡은 동안 누리자는 게 어색하지 않다. 나라의 요직은 전리품()처럼 같은 패에 나누어지고 큰 밥그릇을 챙기지 못한 자들에게는 낙하산 인사로 작은 밥그릇이라도 챙겨줘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민주화 투쟁을 했으니 당연한 보상이 아니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민주화 투쟁은 그들만이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희생된 수많은 이들이 이뤄낸 것이다. 정권을 잡았으면 이들에게 감사하며 겸손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만과 전횡()으로 거들먹거렸다. 부패는 예정된 결과였을 뿐이다. 그들은 국민을 속이고 자신도 속였다.

싹쓸이 세상은 가야 한다

이제 속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더는 감출 수도 없다. 그렇다면 스스로 가면을 벗어야 한다. 안 벗겠다고 뻗대봐야 화투판의 흑싸리 홍싸리만도 못한 꼴이 될 판이다.

그들이 흑싸리가 되든 홍싸리가 되든 그걸 걱정할 건 아니다. 문제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 폐해가 애꿎은 국민 모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이 해야할 일은 자명하다. 스스로 잘못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마지막으로나마 국민을 속이고 자신을 속인 멍에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대통령 아들 문제도 진작 그렇게 풀어야 했다. 노()대통령의 침통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간접사과 쯤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보다 확고한 결단을 보여야 한다.

불행한 대통령은 그동안 본 것만으로도 넌더리가 난다. 빨리 털 것은 털고 한 시대를 마무리해야 한다. 잘못한 일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공과()는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홍단 청단이 싹쓸이하는 세상은 가야한다는 것이다.

전진우(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