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 없는 법은 불법이다는 법언()이 있다. 이 말은 사면이 법의 엄격성에 대한 균형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면은 법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들, 즉 화해와 용서 관용을 제도적으로 관철하는 수단이다. 사면은 법을 인간답고 따뜻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군신()이 엄격하게 구별된 군주주권 시대에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던 사면도 만인이 평등한 민주시대에는 은혜를 입고도 입을 삐죽이는 국민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베푸는 사람을 어렵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군주가 시혜를 베푼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문무왕 9년에 삼국통일을 기념하여 대사면을 단행한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1034년 즉위한 고려 정종은 1035년과 1036년에 잇달아 대사령()을 실시하는데, 그 이유는 지진 홍수 피해로 인한 민심회복과 정치적 안정이었다고 전한다. 여기에는 사형수도 포함돼 있어 장형()으로 감형하여 유배시켰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기념사면은 현대사에도 이어져 건국 이후 지금까지 8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사면과 복권이 단행됐다. 가장 먼저 실시된 것이 1948년 9월 정부 수립을 기념한 일반사면이었다. 역대 정권 가운데서는 전두환 정부가 20여 차례가 넘는 최다 사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두환 정권이 통 큰 정치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고 유지하면서 양산된 시국사범을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대통령 취임 기념으로 사상 최대규모인 532만명에 대한 사면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음주운전과 과속 등 교통사범 481만명의 벌점을 지워주는 대사령을 내렸다. 7월부터는 신용카드 회사들도 신용불량자를 사면하기 위한 개인 워크아웃(신용회복 지원)에 나선다고 하니 대한민국은 이제 관용에서도 세계를 놀라게 할 상황이다. 타인의 행복을 배아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법은 지켜야 하는 것으로 굳게 믿고 또 자식을 그렇게 가르친 선량한 시민들에 대한 보상은 정부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법을 지킨 사람과 법을 어긴 사람의 차이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법을 지켜야 할 동기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종대(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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