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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과는 미흡하고, 정부는 서두르고

Posted July. 26, 200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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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서해교전이 발생한 뒤 거의 한달 만에 유감을 표시했다. 그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우리 측에 전달할 내용은 물론 발표주체와 전달방식에 대해 치밀한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북측의 전화통지문을 전달받은 지 불과 1시간여 만에 통일부 김형기() 차관은 서해사태에 대한 명백한 사과와 유감 표시로 간주할 수 있다고 신속하게 평가했다. 중대한 사안에 대해 서둘러 여론과 큰 차이가 나는 후한 평가를 내렸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가 어제 통일부 차관 주재로 열린 전략기획단 회의에서 입장정리를 위해 논의를 계속하고 대응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는 기대를 갖고 두고 보자는 입장이다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북한이 사실상 사과했다고 밝혀 정부가 북한의 유감을 접수하는 쪽으로 방침을 굳힐 가능성은 여전하다.

정부는 서해교전을 북한의 계획적 도발로 규정했었다. 그리고 명백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북한의 전화통지문이 도착하기 직전에도 김 대통령은 군 주요지휘관 앞에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북한의 유감 표명과 장관급 회담 제의는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 않으나 우리 측 요구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우리 식으로 하면 차관보급에 불과한 김영성() 내각책임참사를 내세운 것도 북한 정권이 성의를 다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게다가 전화통지문 곳곳에는 북한의 책임회피를 위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이처럼 서해교전을 적당히 얼버무리면서 식량 등 경제적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장관급 회담을 겨냥한 북한의 전략에 생각 없이 맞장구를 쳐서는 안 된다. 북한의 의도는 눈앞에 다가온 국제행사를 떠올리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어제 서울에 도착한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남북한 연속방문을 위해 28일 평양으로 출발하고 31일에는 브루나이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가 열린다.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호전시킬 선전효과가 절박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최근 쌀값을 55배 인상한 이례적 조치에서 드러났듯이 경제사정 또한 심각하다.

정부는 북측의 유감표명이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장관급 회담에 응하더라도 서해교전을 매듭짓는 문제를 의제로 채택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다시 정부가 북한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