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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저귀와 슈퍼맘

Posted August. 06, 200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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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처럼 아기와 남자가 등장하는 영화라면 꼭 나오는 장면이 있다. 기저귀를 갈아주려는 순간 아기 오줌이 남자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히는 모습이다(이 경우 아기 주인공은 반드시 꼬마 왕자님이다). 웃기기 위한 장면이겠지만 여자 또는 엄마라면 이런 일 없다. 오동통한 아기 궁둥이를 투덕투덕 쳐주면서 즐겁게 기저귀를 갈아주든지, 아기가 변의를 느낌직한 시간에 쉬 해야지하면서 배변 훈련을 시켰을 거다.

최근 우리나라 아기들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평균 23개월 만에 기저귀를 뗀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역시 우리 아기들은 똑똑해싶다가 마냥 흐뭇해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집애는 진작 기저귀 뗐다는데식의 유별난 경쟁 심리가 큰 몫을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놀이방 가서 비교되면 창피하다고 그 작은 엉덩이에 매를 대는 젊은 엄마도 있다. 게다가 내 아이는 다르다는 똑똑한 엄마들의 자부심, 그리고 배변 훈련도 조기 교육이므로 빨리 시킬수록 좋다는 열렬한 교육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감옥 같은 아기 침대에 아이를 혼자 두는 서구와 달리, 같은 방에서 늘 끼고 돌보는 지극정성도 중요했겠지만.

전문가들은 아기가 강압적으로 기저귀를 뗐을 때의 부작용을 지적한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천근아 교수(영동세브란스병원)는 당장은 대소변을 잘 가리더라도 아이가 불안해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민주적 합리적으로 훈련받지 못한 탓에 비민주성과 비합리성을 체질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독일(33개월)과 영국(31개월) 그리고 미국(27개월) 아기들의 대소변 가리기가 괜히 늦은 게 아닐 터이다. 만일 고집이 황소고집이거나 지나치게 인색하고 완벽주의적인 강박성 인격장애 때문에 고민인 어른은 어머니께 한번 여쭤보기 바란다. 혹시 만 24세의 항문기 때 혹독한 배변 훈련을 시키지 않았는가를.

오해:모성에 관한 진실, 거짓, 예기치 못한 일들 출산 후의 삶:친구들이 절대 말해주지 않는 것 등 요즘 미국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들은 세상엔 엄마 역할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며 슈퍼 맘(super mom)이 못된다고 해서 죄책감 가질 건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기저귀 조기 졸업이 유능한 엄마의 성적표는 아니다. 우선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한 법이므로 조금 이르고 늦고 같은 문제로 안달할 것도 없다. 사람 사는 이치가 다 그렇지만 배변 훈련도, 또는 사랑도, 받는 쪽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주나마나가 아니던가.



김순덕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