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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연형묵

Posted August. 22, 200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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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극동 방문 소식을 전하는 외신 사진 속에 낯익은 얼굴이 자주 눈에 띈다. 살집이 두둑하고 듬직한 체구에 넓적한 호인풍의 얼굴. 김 위원장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매번 외국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혀 북한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임을 짐작케 하는 인물. 국방위원 겸 자강도 당 책임비서 연형묵()이 얼굴의 주인공이다. 올해 77세로 알려져 있지만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꼿꼿한 모습에서 팔순을 바라보는 그의 나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연형묵은 90년대 초 남북고위급회담을 계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정무원 총리였던 그는 90년 9월 서울에서 열린 1차 회담에서부터 마지막인 8차 회담까지 줄곧 북한 수석대표로 참석해 한국의 신문지면과 TV화면에 숱하게 등장했다. 3차 회담까지 그의 카운터파트였던 강영훈() 전 총리는 그는 우리 식의 합리가 통하는 실무형 관료였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하면서 처음 대면하는 순간 이 사람하고는 말이 통하겠구나하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연형묵은 좌절을 딛고 일어선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관심의 대상이다. 그는 남북관계가 꼬이면서 고위급회담이 중단된 직후인 92년 12월 돌연 총리에서 해임돼 자강도 당비서로 쫓겨났다. 당시 베이징의 외교소식통들은 그가 서울을 4차례나 방문하면서 파악한 남한 실정을 김일성 부자에게 보고하면서 북한 사회의 제한적인 개방을 건의했다가 미움을 사 좌천됐다고 이유를 전했다. 김 부자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5시간 만에 해임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쯤 되면 영영 중앙무대에서 사라져야 정상인데 그는 이례적으로 다시 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돌아왔다.

김 위원장은 98년 1월 자강도를 현지 방문한 이후 연형묵에게 노력영웅 칭호를 내리는 등 극진한 대우를 시작했다. 연형묵은 그해 군수산업을 총괄하는 국방위원이 됐고 작년에는 권력서열 8위로 올라섰다. 1인지배체제인 북한에서 누가 권력자의 주변에 포진하느냐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일에 싸인 인물이 아니라 언행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는 인물이 포진한다면 우리에게 나쁠 것은 없다. 연형묵은 비교적 유연한 태도로 남북대화에 임해 북한에도 양보하고 타협할 줄 아는 관리가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인물이다. 그를 중용하는 김 위원장의 뜻이 북한이 조금씩 정상적인 나라로 변하는 조짐이기를 기대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