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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September. 02, 200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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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집들이 날인지, 집나가는 날인지.

지난달 30일 저녁.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집들이 명목으로 삼청동 비서실장공관에 초대한 자리에서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국무총리 지명자의 국회인준이 두 차례나 부결되면서 비등하고 있는 책임론을 의식한 얘기였다.

그러나 박 실장은 곧바로 비서실은 단결과 충성심으로 대통령님이 국정을 잘 마무리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자신의 위치에 변함이 없을 것임을 암시했다. 장대환() 총리지명자의 인준이 부결된 직후 치러진 이날 집들이 행사에 대해서도 주변에서는 취소를 건의했었다. 그러나 박 실장은 그럴 이유가 없다며 예정대로 강행했다.

앞서 7월31일 장상() 총리지명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직후에 열렸던 청와대 대책회의에서도 누군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왔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일축했다고 한다.

때문에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번에 총리 임명동의안이 다시 부결됐을 때도 우린 더 이상 물러설 데도 없다. 박 실장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DJ의 정치적 입장이 어려워진 데 반비례해 박 실장에겐 더욱 힘과 영향력이 쏠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박 실장이 정권의 제2인자 역할을 넘어 병풍()정국까지 막후에서 기획 조정하는 사실상의 대통령 대행을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물론 청와대 측은 펄쩍 뛰지만 여권의 한 관계자는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임기 말의 노() 대통령이 자신의 충복에게 많은 것을 위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4월 초 김 대통령이 과로와 위장장애로 국군서울지구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바로 다음날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당시는 3남 홍걸()씨에 대한 검찰 수사로 김 대통령으로선 옆에 믿을 사람이 절실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와 DJ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1999년 11월22일. 김 대통령은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박 실장에게 비서실장직을 제의했다. 그러나 그는 저는 임기 말 의 비서실장에 어울리는 사람이다며 고사한 뒤 지금은 자민련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며 한광옥() 의원을 추천했다. 다음날 한 의원은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비서실장을 맡은 그는 취임하자마자 준비된 실장의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그는 탁월한 조직 장악력을 발휘했다.

조순용() 정무수석, 박선숙() 공보수석비서관은 물론 김한정() 부속실장, 박금옥() 총무비서관 등 대통령 측근이 모두 박 실장 사람들. 정치권에서 진입한 비서관 행정관의 대부분도 박 실장이 천거했거나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다. 그의 조직장악력은 그가 비서실장에 취임한 이후 굵직한 인사와 관련된 특종이 전혀 없을 만큼 철저한 보안이 유지됐다는 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박 실장은 우선 김 대통령의 면담과 보고 등을 철저히 관리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에선 더 이상 A보고가 없어졌다는 말도 나왔다. 국정원이나 경찰이, 혹은 수석비서관들이 직접 대통령에게만 직보하는 A보고가 사라지고 모든 보고가 박 실장을 통해 이뤄진다는 얘기다.

내각에 대한 비서실의 영향력도 더욱 커졌다.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한 비서관의 얘기. 박 실장 취임 초기 장관이 박 실장을 만나고 나면 부처엔 비상이 걸렸다. 박 실장이 장관도 모르고 있던 사안을 불쑥 던지면 그 장관은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며 경위파악에 나서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실장 나름의 내각 군기잡기였던 셈이다.

요즘 박 실장의 최대 관심사는 임기 말 공직기강 문제다. 김성동() 전 한국교육평가원장이 교과서 편파기술과 관련해 한나라당에 문서를 유출한 사건이 발생하자 박 실장은 김 전 원장의 옷을 벗기도록 했고 각종 비리제보가 들어오자 경찰에 즉각 수사를 지시했다. 최근엔 술 부담금 부과문제가 실무선에서 외부에 흘러나가자 해당 실무자를 인사조치토록 하기도 했다.

병풍 수사를 맡은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의 유임에도 박 실장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많다. 박 실장의 측근은 김정길() 법무부 장관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한 것으로 안다며 최종 결정엔 박 실장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2일 비서실 월례조회에서도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가장 우려했던 것은 청와대가 무력감, 허탈감에 빠졌다는 지적이었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 같은 박 실장의 힘의 원천 중 하나는 DJ에 대한 충성심 외에 능소능대()한 처신이 꼽히기도 한다. 그는 얼마 전 모 언론사 간부의 상가에 갔다가 기자들을 만나 잘 봐달라며 엎드려 큰절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에도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나는 간이라도 빼줄 수 있다고 말한다.

박 실장은 또 내년 2월 DJ의 퇴임 후엔 동교동 사저 근처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 김 대통령을 모시겠다고 말한다. 끝까지 DJ의 그림자로 살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박 실장이 누리고 있는 권력독점 현상에 대해 민주당 일각에서조차 위험한 상황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 중진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박 실장에게 너무 중독()이 돼 있다며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이제는 뜯어고치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어서 필요악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다른 인사는 충신이 환관을 이기는 것 봤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이철희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