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진통 끝에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통령후보의 단일화 재협상이 타결됐으나 양당은 아직 어수선하다. 적어도 축제 분위기는 아니다. 1차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합의사항 유출을 둘러싸고 빚어진 분란과 재협상과정에서 쌓인 앙금, 단일후보 결정의 최종수단인 여론조사 신뢰도에 대한 논란 가능성 등 타결의 뒤끝은 불안하다. 그 바탕엔 의심의 안개가 깔려 있다.
모든 불신은 하나로 모아진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뒤진 쪽이 과연 흔쾌히 결과를 받아들이겠느냐 하는 것이다. 단일화가 현실화될 때까지 성사 여부에 대한 전망을 유보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변수와 제약이 많은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양 당의 정치적 생존과 미래는 물론 유권자들의 신성한 선택이 걸려 있는 후보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무모한 일이기에 이 같은 사태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합의내용중 독소조항이 특히 문제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에 의한 지지율 교란을 우려한 이 괴상한 여론조사 무효화 조항은 어느 쪽이든 마음만 먹으면 단일화를 파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여론의 가변성마저 무시한 것으로, 그렇다면 TV토론은 왜 하는 것인지를 되묻게 한다. 여론조사 방법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유권자들에게는 묻지 말고 선택이나 하라는 식이어서 비판의 대상이다.
합의 과정이야 어떻든 이제 유권자들의 관심사는 두 사람의 합의 준수 및 결과에 대한 승복 여부다. 만약 또다시 양 당이 오락가락하거나 갈팡질팡하면서 유권자들을 우롱한다면 거센 역풍에 직면할 것이다.
단일화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이념과 정책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양 당이 당면한 대선 승리만을 위한 선거연대가 아니라 함께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수권연대로서의 면모를 과연 얼마나 갖출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후보등록까지는 4일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