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세계를 빨아들인 열도의 창

Posted December. 25, 2002 23:03,   

日本語

오후 8시 나가사키 시내. 요즘 TV드라마 야인시대를 통해 눈에 익은 로멘덴샤()가 길 한가운데로 달린다. 호텔과 상가, 점포가 늘어선 거리가 성탄 장식으로 화려하다. 관광협회의 마츠오씨가 먼저 안내한 곳은 이나사야마 공원(해발 333m)의 로프웨이(케이블카). 서울의 남산 같은 곳으로 그 곳에 서니 바다를 향해 열린 계곡에 들어선 나가사키 항과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한밤 불빛으로 수놓인 야경이 밤바다와 어울려 아름답다. 하코다테(홋카이도) 고베(효고현)와 함께 일본의 3대 야경에 든다는 이 풍경. 1945년 8월 9일 원폭투하로 단 3초만에 잿더미 변한 바로 그곳임을 알고 본다면 글쎄, 고베나 하코다데와 비교할 수 있을까.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세계로 난 창(Window to World)으로 불린다. 쇄국정책으로 문호를 꽁꽁 닫아걸었던 당시 일본 유일의 무역항이었던 덕분이다. 그런 특별한 역사는 곳곳에서 숨어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일본 최초의 고딕성당 오우라 텐슈도()에, 또 하멜 일행이 찾은 네덜란드 상관 데지마와 일본식 중국음식 짬뽕이 태어난 중국식당 사해루() 등에.

나가사키의 첫 아침은 글로버 힐에서 맞자.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이다. 서양 문물의 수입항이라는 도시의 정취가 잘 간직한 공원 글로버 공원(Glover Hill Park)과 성당 오우라 텐슈도가 여기 있다. 성당이 설 당시(1865년)는 에도 막부의 천주교 탄압(1600년대 초반)과 동시에 시작된 쇄국정책이 종지부를 찍고 문호를 활짝 연 근세. 여기서 기적 같은 일이 펼쳐졌다. 잔혹한 탄압으로 엄청난 순교자를 낸 뒤 200여 년이나 지난 마당인지라 신자가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성당 문을 연지 한달 후. 일본인 14명이 성당을 찾았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성모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당 옆 글로버 공원에 들어섰다. 19세기 영국식 저택이 여러 채 있다. 당시 영국인 무역상이 살던 저택을 옮겨온 것. 정원에서 한 외국인과 기모노 차림의 일본여인 동상을 보았다. 나비부인의 작곡자 푸치니, 그리고 나비부인역을 맡았던 일본의 프리마돈나 타카미 미우라다. 그 아래에 이렇게 씌어 있다. 30년 간 오페라에 출연하며 일본여인의 모습을 세계에 알린 인물.

언덕을 내려와 나가사키 현청 앞 데지마()와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데지마는 주변 바다의 매립으로 그 모습을 잃은 지 오래. 소인국처럼 만든 미니어처만이 옛 모습을 보여준다. 데지마란 오사카의 간사이공항과 같은 인공 섬. 포르투갈 무역선을 통해 전파된 천주교가 확산되고 민란이 일어나자 에도 막부는 탄압과 동시에 데지마를 지어 포르투갈 상인의 거처를 이곳으로 제한했다. 포르투갈 상인 추방 후 이곳은 네덜란드 상인이 차지했고 조선을 탈출한 하멜 일행 역시 여기에 머물다 귀향선을 탔다.

나가사키 현에는 그러한 데지마의 20세기 판이 있다. 요즘 한국인 관광객의 인기를 모으는 네덜란드 주제공원 하우스 텐 보스(Huis Ten Bosch)가 그것. 오란다(홀랜드의 일본발음)세계 최고일 만큼 17세기 당시부터 연유한 네덜란드에 대한 호감의 산물. 오무라 만을 매립해 조성한 이곳은 여러 면에서 데지마를 빼닮았다.

우선 이 안에 들어서면 누구든지 금방 자신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만다. 모든 것이 네덜란드와 너무도 똑같기 때문. 팻말에 입구 출구 대신 입국 출국이라고 써 붙인 것은 그래서일까.

암스테르담처럼 오란다풍 건물(호텔 전시관 뮤지엄)사이엔 캐널(수로)이 있고 이리로 보트가 다닌다. 주변에선 풍차가 돌고 상점에서는 치즈와 나막신을 판다. 도시의 모든 건물 역시 네덜란드 풍 좁은 창문의 벽돌집. 매일 밤 여기서는 불꽃놀이와 레이저 광선 쇼가 펼쳐진다. 31일 밤 카운트 다운 쇼는 일본 최고의 인기행사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