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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축의금

Posted December. 26, 20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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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씨가 민선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서울시 실국장 이상 간부들은 경조사에 일률적으로 3만원짜리 봉투를 보냈다. 고 시장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서울시장이 보낸 봉투에 1만원권 석 장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소 야릇한 기분을 느꼈다. 서울시 실국장들은 반드시 챙겨야 할 경조사에 3만원짜리 봉투를 내밀기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감사관실에서 정한 규정에 어쩔 수 없이 따르다 보니 봉투에 넣을 금액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 마음이 편했다고 털어놓는다.

넉넉지 않은 직장인들은 결혼식이 줄을 서는 봄가을이나 장례식이 많은 겨울철에는 3만원씩 넣는 것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경조금마저 인플레 되다 보니 3만원으로는 안 되는 곳들도 많다. 호텔 결혼식장에서는 보통 7만8만원짜리 음식이 나오는데 5만원이 든 봉투를 내놓고 나오려면 밥값 떼어먹는 기분까지 든다. 공직선거법에는 국회의원 시장군수 등은 지역구민 경조사에 1만5000원 이상 금품을 제공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이 같은 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은 경조금으로 한 달 수천만원이 들어간다고 하니 그릇된 가정의례 문화가 정치부패를 조장하는 셈이다.

경조금은 액수가 크지 않으면 꼭 나쁘게 볼 것만도 아니다. 서민들은 그저 내가 경조사를 당했을 때 이자는 못 받더라도 원금은 돌려 받겠거니 하며 곗돈 붓는 기분으로 성의를 표시한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아들 건호씨가 결혼식을 올렸다. LG전자에 다니는 건호씨는 하객들로부터 3만원 한도 내에서 축의금을 받자고 했으나 아버지가 말렸다고 한다. 얼마전 한 대기업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반수 가까이가 경조금으로 3만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응답했다. 노건호씨가 3만원 이내에서만 받자고 했던 것도 이러한 직장인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 같다.

중국 한국 등 유교문화권 국가는 전통적으로 체면을 중시해 관혼상제를 성대하게 치른다. 중국에서도 지인 자녀의 결혼식에내는 훙바오()라는 축의금이 서민가계에 적지 않게 부담을 주는 모양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경조금을 제한하는 가정의례준칙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오래된 풍속을 법으로 어떻게 해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대기업 직장인들이 평균선으로 생각하는 3만원을 상한으로 정하면 어떨까.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곗돈 떼인 셈치고 3만원짜리 봉투도 안 받는 수범을 보이면 금전적으로 손해 보는 대신에 주위의 칭송을 얻을 수 있겠건만.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