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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레의 교훈

Posted January. 10, 200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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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자 연암 박지원( )의 열하일기는 그가 사신 일행을 따라 청나라를 여행하고 와서 쓴 기행문이다. 그는 이 글에서 중국에서 본 여러 문물을 거론하며 조선도 이제 성리학 같은 관념적 학문을 지양하고 백성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실용적 학문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대표적으로 든 문물이 바로 수레()였다.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결코 나라가 부강해질 수 없으니 하루빨리 많이 만들어 팔도강산에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열하일기 중 한 대목을 옮겨 보자. 나라의 쓰임 가운데 수레보다 더한 것이 없다. 이에는 융거() 수차() 포차() 등 천백가지가 있어 창졸간에 이루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타는 수레와 싣는 수레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니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그는 그러면서 수레가 많아지면 길이 저절로 닦여져 나라의 교통이 원활해지고 한 곳에서만 나는 물산들이 지체되지 않고 골고루 유통되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수레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예로 든 바닷가 사람들은 새우나 정어리를 거름으로 밭에 내건만 서울에서는 한 움큼에 한 푼이나 하니 이렇게 귀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실제로 수레는 문명 발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처음의 원시적인 수레가 점점 변해 인력거 마차 자전거 자동차 기차 전차 등으로 발전을 거듭한 것이다. 이 같은 교통수단의 발달이 씨줄 날줄처럼 빽빽이 짜여진 지금의 도로망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수레의 사용이 길을 만든다는 연암의 주장은 앞을 내다보는 훌륭하고 실용적인 정책 제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수레는 단순히 교통수단으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레의 원리에 시대와 인생의 철학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레바퀴는 양쪽이 똑같아야 제대로 굴러간다. 한 쪽이 기울면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수레는 물건이 가득 담겨야 소리없이 잘 구른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도 거기에서 나왔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보수든 혁신이든, 나이 든 세대든 젊은 세대든 두 개의 수레바퀴가 균형을 이뤄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또 새로운 정권 담당 세력이 빈 수레처럼 요란하기보다는 속이 꽉 차 조용하지만 무게있는 존재가 되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광주() 신창동 철기시대 유적에서 기원전 1세기 때 것으로 추정되는 수레 부품이 출토된 것을 보면서 수레의 교훈을 다시 생각한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