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적 연구소인 벨연구소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1100명에 달하던 연구소 내 과학자 수는 400명으로 줄고, 3억5000만달러에 이르던 예산은 1억1500만달러로 감소했다. 생태학과 심리학, 경제학을 전공하는 과학자들은 모두 쫓겨났다. 시장의 요구에 굴복한 것.
1925년 당시 장거리 전화회사인 AT&T의 부설 연구소로 출발한 벨연구소는 80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숱한 발명품과 발견을 통해 인류의 생활과 문명을 풍요롭게 해 온 미국 최고 권위의 연구소. AT&T가 분할되면서 정보통신 장비회사인 루슨트의 부설기관이 된 이 연구소는 루슨트의 경영실적 악화로 인원과 예산을 대폭 감축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은 23일 벨연구소의 쇠락은 미국 기초연구 분야에서 일고 있는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그 요약.
기초연구 분야에서 1970년대까지 전체 예산의 3분의 2를 지원해온 미 정부는 점차 비중을 낮춰 왔고 그 공백을 민간기업들이 메워왔다. 그러나 세찬 국제적 경쟁과 수익을 앞세우는 주주들의 입김이 강화되면서 민간 기업들도 기초연구를 외면하고 있다. 제록스사 역시 지난해 팔로 알토 연구소를 분사시키면서 자구책을 세우도록 했다. 벨연구소의 경우 그 의미가 더 뼈아프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찰스 베스트 총장은 이는 국가적 비극이라며 벨연구소는 수십년 간 먼 미래를 내다보며 연구를 해왔을 뿐 아니라 가장 훌륭한 과학자들을 고용해왔다고 말했다.
트랜지스터와 팩스 머신, VCR, 통신위성, 레이저 등 벨연구소가 개발하거나 기초기술을 제공한 발명품들은 20세기 인류의 기술개발사와 일치한다. 65년 천문학자이던 아르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은 궤도를 비행하는 물체와 라디오 안테나 사이의 교신이 교란되는 현상을 물고 늘어져 우주가 대팽창을 통해 생겨났다는 빅뱅이론을 처음 발표했다. 이 연구소는 두 사람을 포함해 모두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같은 연구는 과학자들 사이에 회사가 우리의 연구에 왜 돈을 대는지 모르겠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시장의 요구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연구를 보장할 때 가능한 것. 하지만 이제는 우선적으로 정보통신과 관련한 분야에 연구를 집중해야 한다.
윌리엄 오시어 벨연구소장은 현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만큼만 진보할 수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한때 2870억달러였던 루슨트의 시장가치는 현재 105억달러에 불과하고 1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홍은택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