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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스가 남긴 것

Posted June. 25, 200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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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사스 환자는 작년 11월 중순경 중국 광둥()에서 발생했다. 광둥에서 변종 폐렴이 급속하게 번져 305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5명이 숨졌다는 보고서가 세계보건기구(WHO)에 공식 접수된 것은 2월 11일. 중국 정부는 무려 3개월 가까이 신종 전염병의 발생 사실을 숨겼다가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WHO가 24일 베이징()에 대한 여행자제 권고를 해제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은 중국이 사스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사스는 아시아 지역에만 160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

중국은 80년대부터 시장경제 노선을 채택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치는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이고 언론통제가 심한 편이다. 광둥에서 사스가 기승을 떠는 동안 베이징 정부는 괴질 기사가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도록 언론을 통제했다. 정보 통제로 말미암아 국민은 예방조치를 취할 기회를 차단당했고 사스 퇴치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이 지연됐다. 중국에서 있었던 1960년대 대약진운동 기간에 3000만명이 목숨을 잃은 대기근도 정보 통제가 원인이었다. 마오쩌둥()이 집단농장 제도를 도입한 후 곡물 수확이 감소된 사실을 은폐하고 과장 보고가 판을 치면서 바르게 대처할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독재국가에서나 동원 가능한 강압적인 수단으로 사스를 효율적으로 방어한 나라도 있다. 북한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내외국인은 신분의 고하를 불문하고 평양에서 1시간 거리인 안주 청천강 호텔에 10일 동안 격리시켰다. 세계식량계획(WFP) 직원은 10일 동안 이 호텔에 갇혀 매일 두 차례 체온 검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귀국한 북한 외무성 부상과 직원들도 일반인과 똑같이 격리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기본적 의료시설과 의약품이 부족한 북한은 사스에 대해 국가적인 공포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경제 건강 통계가 정치적 의도에 의해 조작되고 있고 언론인 또는 학자가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는 국가기밀누설죄로 처벌받는다. 중국의 사스 초기 대응 실패는 국제화한 시장경제와 조화롭게 작동하지 못하는 경직된 정치체제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옛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소비에트 체제의 비능률을 깨닫고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생명윤리학자 에지키엘 에마누엘은 소련이 체르노빌에서 학습한 것처럼 중국도 사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북한은 논외이겠지만.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