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현대로부터 100억원 이상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된 것은 김대중 정권의 정경유착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이 돈이 대북 송금 특검에서 드러난 현대 비자금 중 150억원이 아닌 라는 점에서 그 엄청난 규모가 놀랍다.
무엇보다 이 돈의 전달 시점이 2000년 4월 총선 무렵이라는 점에서 당시 민주당의 선거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주목된다. 사실로 확인되면 대북사업을 독점하게 해준 대가로 집권 측이 현대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요구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에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비용을 부담시키면서 정치자금까지 내게 했다면 이는 집권측의 파렴치한 행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자금 부담이 현대의 경영 악화를 불렀고 결국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까지 연결됐다는 인과관계를 전혀 부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들에게 엄청난 액수의 돈이 뿌려졌다는 것은 정치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민주당이 공식 비공식으로 사용한 돈이 1000억원이 넘을 것이란 얘기도 나돌았다. 어느 후보는 원 없이 돈을 써봤다고 말했다. 그 돈이 이번에 드러난 현대 비자금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등 정치개혁과 정경유착의 근절을 위해서도 이번 현대 비자금의 이동 경로는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검찰은 현대가 전체적으로 얼마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그 대가는 무엇인지, 정치권에 유입됐다면 누구에게 얼마씩 전달됐는지, 권씨가 개인적으로 전용한 일은 없는지 등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권씨측도 김영완씨로부터 10억원을 빌렸을 뿐이라는 식의 어설픈 해명만 할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한다. 비선()의 권력 실세가 정치자금을 비밀리에 조성해 선거출마자에게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정치를 좌지우지해온 후진적 선거 관행은 이제 청산돼야 한다. 권노갑 비자금을 숨길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