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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보1호 푸대접

Posted August. 21, 20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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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숭례문(남대문) 주위를 지날 때마다 왜 이 건축물이 대한민국 국보 1호로 지정됐을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건축미가 빼어나고 현존하는 한국 성문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고는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꾀죄죄한 모습은 아무래도 보기 민망하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숭례문 안으로 들어가 봤거나 문루()에 올라가 본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파리의 개선문처럼 올라가 보거나 로마의 개선문처럼 들락거리면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을까.

조선시대 도성의 남쪽 정문인 숭례문이 완공된 것은 태조 7년인 1398년. 이후 세종 29년인 1447년 개축되었고 성종 10년인 1479년에도 대규모 보수공사가 있었다. 남산의 화기()를 억누르기 위해 세로로 쓴 편액은 당대의 풍류남아였던 양녕대군의 친필로 전해진다. 1907년 일본 왕세자(훗날 다이쇼 천황)가 서울에 오게 되자 일제는 대일본의 왕세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밑을 지날 수 없다며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을 헐어버리면서 도로와 전찻길을 내고 둘레에 일본식 석축을 쌓았다. 일제는 한반도의 문화재를 샅샅이 파악한 뒤 1934년 총독부에서 가까운 순서로 문화재 관리 번호를 매겼고 그에 따라 숭례문이 별 뜻 없이 국보 1호가 됐다고 한다.

숭례문 밑으로 지하철이 지나 진동 피해를 겪고 있고 고립된 섬처럼 되어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원천 봉쇄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몇 해 전 필자가 우연한 기회에 이탈리아 문화재안전진단 전문가와 함께 올라가 본 문루 2층에는 쓰고 남은 부재가 널려 있어 깜짝 놀랐다. 최근 석축 중앙의 무지개 모양 홍예석()이 떨어져 나가 보수 공사를 했다고 하지만 말 못하는 숭례문이 당하고 있는 수모는 도저히 국보 1호에 대한 대접이라고 할 수 없다. 서울역 쪽에서 바라보면 태평로변 5층 건물 옥상에 사람 키 34배나 되는 실물모양의 건강음료 회전광고탑이 서 있어 주변 경관을 크게 해치고 있다. 또 대문 양쪽 날개 옆은 잔디보다 잡초가 더 무성하다.

요즘같이 비가 자주 내리는 때면 주말 골퍼들은 골프장 잔디 상태가 어떨까 걱정하게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 무연고 묘처럼 버려져 있지만 누구 하나 눈여겨보거나 관심을 갖는 이들이 없다. 숭례문 보호 철책 주변에 어설프게 심어져 있는 무궁화나 노랗게 시들어 가는 관상수는 우리 모두의 수치다. 청와대나 서울시장공관의 잔디와 관상수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