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이 경쟁적으로 정치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안()대로만 된다면 정치자금 투명화도 앞당겨지고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주범인 지구당도 폐지될 것 같다. 다행스러운 일이나 우려도 없지 않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됐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지구당후원회와 개인후원회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가 하루 만에 유보키로 한 것은 좋은 예다. 정치개혁이 시대적 요구이긴 하나 졸속이 돼서는 안 된다.
여야 정치개혁안의 핵심은 돈 안 드는 선거로 압축된다. 선거 때마다 법정한도액을 초과하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는 어느 후보도 검은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악순환도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맞는 진단이고 처방이다. 돈 안 드는 선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돈을 주는 정치인도 없어야 하지만 돈을 받는 유권자도 없어야 한다. 정치인만 욕할 게 아니다.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도 있는 법이다. 선거철이면 단체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후보에게는 온갖 행사 지원 요청이 쏟아지는 구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구 능금협동조합장 선거에서 돈을 받은 대의원 10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어느 후보로부터 300만500만원씩을 받고 지지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돈을 준 후보는 물론 받은 사람들까지 구속한 것은 이례적이다. 검찰은 내년 총선에서도 돈 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돈 받은 유권자들에 대한 무더기 구속도 불사할 것이라고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제 손 벌리는 유권자들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대선자금 불법 시비로 나라가 절단이 날 지경인데 여전히 돈과 양심을 맞바꿀 생각이라면 개인으로나 국가로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나라의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치밖에 못 갖는다는 말이 있다. 손 벌리는 유권자가 있는 한 정치개혁은 백년하청()이다. 유권자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