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비극을 그린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한 인천 실미도에서 멀지 않은 월미도()는 러시아에는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인천이 아직 제물포로 불리던 1904년 2월 9일 러시아와 일본 함대가 이곳에서 격돌했다. 일본이 뤼순()항을 기습해 러일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바로 다음 날이었다. 18개월 후 끝난 러일전쟁의 승패를 예고하듯 러시아는 제물포 해전에서 참패했다.
러시아 함대는 순양함 바랴그와 포함() 카레예츠 등 3척이었다. 카레예츠는 러시아어로 한인()이라는 뜻. 러시아는 한인이라는 이름의 함선을 보내 한반도 장악 의지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러시아 함대는 5배나 수가 많은 일본 함대의 공격을 받고 전멸 직전의 상태에서 제물포항으로 피해야 했다. 패배를 깨달은 브세볼로드 루드네프 함장은 부하들을 하선시킨 후 자폭해 함대와 최후를 같이했다.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완전히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한 수 아래라고 얕봤던 일본의 야망과 민첩한 움직임을 읽지 못하고 준비 없이 전쟁을 맞았다가 패배를 자초했다. 제물포항의 러시아 함대는 한반도의 전신망을 미리 장악한 일본의 방해로 본국과의 교신마저 끊긴 상태에서 전투에 나섰을 정도였다. 러시아가 인천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이 치욕스러운 패배의 역사를 다시 떠올린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과의 수교가 임박하던 1989년 옛 소련 해군은 태평양함대에 배치된 9000t급 미사일순양함에 바랴그란 이름을 붙여줬다. 지난해에는 1000t급 대잠초계함을 카레예츠로 명명했다.
바랴그와 카레예츠가 100년 만에 인천으로 들어온다. 3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3척의 러시아 함정은 10일 인천에 도착해 제물포해전 현장에서 기념행사를 갖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국의 각축이 100년 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오늘이다. 러시아는 당시의 아픈 패배를 새삼 되씹으며 다시 벌어진 동북아 주도권 경쟁에서는 밀리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려는 듯하다. 정작 100년 전 인천 앞바다를 남의 전쟁터로 내줬던 우리는 그때의 기억을 얼마나 소중히 되새기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김 기 현 모스크바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