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마침내 휘날렸다.
6일 개봉되는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순수제작비(147억원), 톱스타 장동건과 원빈, 쉬리의 강제규 감독 등 어느 쪽으로 눈을 돌려도 궁금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영화는 한국전쟁이라는 까다로운 소재에 대한 본격적 도전과 할리우드 전쟁영화를 연상시키는 스펙터클을 선보인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기립 박수를 받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영화인가
쉬리가 남북분단을 액션과 멜로의 밑그림으로 사용했다면 태극기는 전쟁에 던져진 형제를 통해 그 분단의 근원과 상처를 그렸다.
영화는 50년간 형을 기다려온 동생 진석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1950년 서울 종로. 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형 진태(장동건)와 대학진학을 앞둔 동생 진석(원빈). 피난을 떠난 진태는 대구에서 진석이 강제로 징집되자 동생을 지키기 위해 함께 입대한다.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동생을 제대시키려면 훈장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진태는 전투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혁혁한 공을 세운다. 북녘 땅 끝에 태극기를 꽂을 날은 가까워지지만 형제는 점점 멀어진다.
할리우드급 스펙터클
1950년 낙동강 전선의 대치 등 4차례의 주요 전투장면은 우리 전쟁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태극기의 전투는 버튼을 누르면 사람이 죽는 첨단형이 아니다. 무려 500여만 명의 피와 살로 감당해야 했던 50년대의 전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들고 찍기(핸드 헬드) 기법를 이용한 화면의 흔들림과 근거리에서 촬영된 적나라한 살육의 묘사, 생생한 신음을 전달하면서 이 싸움이 게임이 아니라 잔인한 현실임을 보여준다.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총알의 궤적을 보여주는 기총소사 등 몇 장면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새까맣게 밀려드는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장사진을 이룬 피난장면은 압권이다.
왜 태극기 휘날리며인가
강 감독은 감독님, 극우()세요라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애지중지 지켰다. 영화 속 태극기의 코드는 애국심이나 친근함이 아니다. 태극기와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깃발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꿈을 짓밟는 상징으로 존재한다.
진태도 그 깃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념적 지향 없이 오로지 동생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총을 잡은 진태의 전쟁도 광기로 치닫는다. 그런 형을 보는 동생의 시선은 다름 아닌 좋은 전쟁도, 정의의 전쟁도 없다는 감독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태극기는 한국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묻는 영화가 아니다. 다만 이게 다 꿈이면 좋겠어. 정말 진짜 같은 이상한 꿈이라고 말하는 보통사람들의 희생을 말없이 웅변할 뿐이다.
원빈 일병 구하기
영화의 약점은 지나치게 단선적인 스토리에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화두를 형제라는 작은 그릇에만 담아 러닝 타임 148분을 끌고 가기에는 다소 버거워 보인다. 극적 긴장을 풀어주는 감초 역할의 고영만(공형진)과 진태 형제의 어머니(이영란), 나이든 진석(장민호) 등의 개성적인 연기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조연의 비중과 디테일이 부족해 전쟁의 실체를 풍부하게 전해주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10분이 감동적임에도 불구하고 반전()과 결말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닌 원빈 일병 구하기라는 달갑지 않은 비난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장동건은 진석을 구하면서 다시 태어났다. 후반부에 보여준 그의 광기와 카리스마는 진정한 배우의 탄생을 알린다.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