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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인터뷰

Posted April. 23, 2004 23:00,   

日本語

내 이름은 빨강 1,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350쪽 341쪽 각 9000원 민음사

파묵은 백지에 고도의 윤곽을 금방 그려보였다. 어릴 적 꿈이 화가였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터키의 철도 건설을 도맡아 한 갑부였으며 아버지 역시 건축가였다. 어머니는 오스만제국 귀족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저한테 화가와 건축가의 중간쯤 되는 설계사가 되라고 했지요. 그래서 이스탄불대 건축학과에 들어갔지만 결국 중퇴하고 작가의 길로 가게 되더군요. 저는 아버지의 또 다른 성품을 물려받았던 겁니다. 수천권의 책을 가졌던 아버지는 소설가가 꿈이었습니다. 가끔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사르트르를 만나곤 하셨지요.

그는 지금까지 10권의 책을 썼지만 1998년에 발표한 내 이름은 빨강이 가장 성공했다고 말했다. 32개국에서 번역됐으며 현재까지 프랑스어판 20만권, 영어판 20만권 등 70만권 이상이 팔려나갔다. 2002년 프랑스의 최우수 외국문학상, 2003년 이탈리아의 그린차네 카보우르상, 같은 해 아일랜드의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을 받았다. 이들 상의 수상자로는 귄터 그라스, 도리스 레싱, 움베르토 에코, 밀란 쿤데라 같은 이들이 있다.

파묵은 언젠가 작가로서 명운을 걸고 그림을 소설로 다루기로 했다며 바로 그 작품이 내 이름은 빨강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무엇보다 지적인 재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과 연애소설이라는 두 가지의 정밀한 모형건물을 쌍둥이처럼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1591년의 이스탄불. 알라의 시각()을 반영하는 이슬람 전통의 세밀화가 절대 화풍()이던 이 도시에 인간중심적인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회화 스타일이 스며들어오자 화가들 사이에는 갈등이 생겨난다. 술탄의 명을 받아 비밀리에 베네치아 스타일의 회화집을 만들던 화가들 중 한 사람이 살해되자 회화집 제작 책임관은 12년 동안이나 이스탄불을 떠나있던 자신의 조카 카라를 진상을 규명할 탐정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제작 책임관마저 살해되자 카라는 자신의 옛 연인이기도 한, 제작 책임관의 딸 세큐레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반드시 잡아내야 할 처지가 된다.

카라는 세큐레의 얼굴이 잊혀질까봐 베네치아 스타일의 그녀 초상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회한에 젖는다. 그러나 카라의 반대편에 선 이슬람 세밀화의 노대가()는 장엄한 어둠 속에서 신이 내린 최후의 절대미()를 영접하기 위해 황금바늘로 자기 눈을 찌르는 비장한 용단을 내린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다양한 울림을 갖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세속주의, 세계화와 지방주의, 서구문명과 동양문명, 신과 인간, 진보와 보수 같은 굵직한 테마들을 안고 있다.

파묵은 소설 속의 술탄은 무랏 3세에 해당한다며 그는 그림 수집에 많은 돈을 쓴 데다, 소설에서처럼 이슬람 성력() 1000년(1622년)을 앞두고 길이 남을 회화집을 만들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을 쓰려고 취재를 위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은 일이 있습니다. 이슬람 세밀화들을 찾아오는 관람객은 박물관에서 길을 잃은 일본인 정도인 반면 서유럽 미술 전시관에는 발 디딜 틈이 없더군요. 서글퍼졌습니다.

그러나 그를 슬프게 한 이슬람 세밀화는 내 이름은 빨강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품 발표 6년째를 맞지만 그의 집필실 책상 옆에는 이 작품과 관련한 캐나다 텔레비전과의 인터뷰, 우크라이나 슬로베니아 영국 미국에서의 스케줄 등이 가득 적혀 있다.

그는 지난 30년간 오로지 펜으로만 써 왔다며 졸필이라 단 한 사람의 편집자만이 내 글을 알아보고 타이핑해 준다고 말했다.

그 옛날의 세밀화가들이 화폭 위에 열정을 퍼부었던 톱카프 궁전의 화원()을 아스라이 바라보며 파묵 역시 또 다른 세밀화를 그려온 것이다.



권기태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