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일이었다.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는 순간 그의 사임을 알리는 시곗바늘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뛰어난 축구지도자라도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2002년 여름 이뤄 놓은 성과 이후 한국 축구의 변화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브뤼노 메추, 셰놀 귀네슈, 필리프 트루시에가 차기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히딩크가 해냈던 것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2002월드컵은 그만큼 특별했다. 한국의 4강 신화는 히딩크만의 공이 아니다. 히딩크와 대한축구협회, 한국 국민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었다.
6월 초에 한국은 터키(2일과 5일)와 평가전을 벌인다. 그때쯤이면 신임 감독이 선정될 것이다.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터키의 귀네슈가 신임 사령탑을 맡는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귀네슈는 파이터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옳다면 밀고 나간다.
메추도 내심 서울행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쿠엘류가 14개월 동안 72시간밖에 팀을 훈련시킬 시간이 없었다고 불평한 것을 알고 있다. 메추도 세네갈을 조련할 때 쿠엘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팀워크를 잘 다듬어 월드컵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무너뜨렸다.
트루시에는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일본에서 보여줬다. 트루시에는 지금 카타르 대표팀을 맡고 있음에도 한국 대표팀 신임 감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는 에메 자케가 최적임자다. 자케는 199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완벽하게 만들어 정상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대표팀이나 협회에서 일하기를 포기하고 유소년축구에 몸을 바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두 번이나 한국행을 거절했다. 돈이나 기념비적인 도전이 아니고서 그의 마음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로제 르메르도 프랑스의 유로2000 우승을 연출했다. 하지만 2002월드컵 16강 탈락이란 치욕을 남겼다. 그는 올해 아프리칸컵에서 튀니지를 정상에 올려놓으며 건재를 과시했지만 3월 계약을 2년 연장했다.
물론 루이즈 펠리페 스콜라리도 좋은 후보다. 그러나 그는 올 6, 7월 유로2004에서 포르투갈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만일 대한축구협회가 7월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그를 영입할 수 있다.
글렌 호들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환상적인 선수였고 훌륭한 감독이 될 수도 있다. 토튼햄에서 선수들에게 적절한 동기 부여를 하지 못해 이번 시즌 6경기 만에 해임당한 게 흠이지만.
누가 오든 2002월드컵은 지나간 역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새 시대는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는 법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올여름 굳이 감독을 뽑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서둘러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기보다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