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월 일. 수도 서울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컴퓨터 네트워크가 갖가지 사고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전력 공급이 중단되고 전화, 교통, 금융 등 모든 전산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도시는 일시에 혼란에 빠진다. 국방정보 네트워크 역시 다운돼 각 군간 지휘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그나마 전투기 이착륙은 수동으로 이뤄지지만 본부의 전술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눈먼 까마귀 신세다. 해커 전사(hacker warrior)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남북한 사이버전쟁(cyber war)의 가상 시나리오다.
본격 전쟁으로 돌입하는 전 단계를 묘사하는 이런 일들이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답은 충분히 가능하다다. 북한이 인민무력부 정찰국 산하에 해킹부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북한이다. 해커 전사를 양성할 인적자원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잘 키운 해커 한 명, 1만 병사 안 부럽다는 말에 비춰볼 때 이건 북한에게 놓칠 수 없는 신천지였을 것이다.
걸프전 때 처음 등장한 사이버전쟁 수단은 그 후 유고전(1999년) 등 거의 모든 분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사이버 부대를 창설해 다양한 공격 및 방어수단을 개발하는 등 이 분야 연구에 가장 적극적이다. 이란 쿠바 북한 등 가난한 나라들의 관심도 높다. 수백만달러씩 하는 미사일을 쓰지 않고도 논리폭탄(logic bomb)이나 컴퓨터 바이러스로 적의 신경망을 마비시키는 값싼 전쟁수단이기 때문이다. 과거 화생방무기가 빈자()의 핵무기로 불렸던 것과 같은 이치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세계 첨단을 달린다는 한국은 어떤가? 불행히도 그동안 정부 차원의 대비책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민간 쪽에서 몇 해 전부터 10만 해커 양성을 주장하는 등 적극적이다. 그런 점에서 엊그제 국군기무사령부가 북한의 사이버 공세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한 것은 차라리 때늦은 감이 있다. 북한의 해커 전사가 사이버 대한민국을 휘젓고 돌아다니게 놔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