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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끄러움 가르치기

Posted July. 12, 200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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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모처럼 가족들과 뮤지컬 구경을 갔다가 곤욕을 치렀다. 옆 좌석에 앉은 청년이 시종 맨발을 앞좌석 뒤에 있는 액정 모니터에 올려놓아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시간 동안 문화의 향기가 아닌 발 냄새를 맡은 셈이다. 화를 벌컥 내며 뛰쳐나오고 싶었으나 간신히 참았다. 다행히 청년은 그리 몰상식한 사람은 아닌 듯 했다.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 나와 조심스럽게 한두 마디 하자 얼굴을 붉힌다. 공연 도중 그를 제지 못한 나 자신이 더욱 한심했다.

앞서 다른 공연장에서 생긴 일이다. 자리가 이층 맨 앞쪽이었는데 옆 좌석의 젊은 여성이 난간에 오페라글라스와 팸플릿, 카메라폰을 죽 늘어놓은 것이 불안해 보였다. 공연 도중 2층에서 물건이 떨어져 아래층 관객들이 깜짝 놀라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다 자칫 팸플릿 같은 것들이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좌석 아래에 내려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불쾌한 내색을 하며 손도 까딱 않는다. 공연 틈새에 카메라폰을 터뜨려 사진을 찍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얼마 전 한 음식점에서 겪은 일이다. 냉방을 위해 실내 창문을 모두 닫아놓은 좁은 공간에서 남녀노소 30여명이 빼곡히 둘러 앉아 맛있게 냉면을 먹고 있는데 먼저 식사를 마친 옆 테이블의 20대 여성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인근 좌석의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헛기침을 하면서 눈치를 주었으나 개의치 않고 여유만만하게 담배 한 대를 다 태웠다. 담배 연기 때문에 냉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흡연을 제지하지는 못했다. 남성이었더라면 아마 싫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어디 공연장과 음식점뿐이겠는가. 지하철, 도서관, 버스 안과 같은 공공장소는 물론 인터넷 공간에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위와 언사가 만연돼 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전체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래도 개전()의 여지가 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정말로 구제불능이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 제목 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를 따와 범국가적 캠페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