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중국의 정허 열풍

Posted July. 14, 2004 22:28,   

日本語

10일 난징()에서는 중국 해군의 정허()함 수병 1000여명이 선상 도열한 가운데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명()초의 대()항해가 정허의 서양 원정 600주년 D-1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정허함대가 출항했던 장쑤()성 타이창()에서는 지난달 9일 당시 범선 뤼메이마오()호를 복원한 목제선이 해상 실크로드 답사에 나섰다. 중국은 내년 600주년에는 국가 차원의 기념행사, 국제해양박람회, TV 특집, 세미나, 전시회 등을 가질 예정이다.

윈난()성 출신의 이슬람교 환관이었던 정허는 명대() 공포의 비밀경찰기구였던 동창()의 초대 총수로 영락제가 조카 건문제로부터 황제위를 찬탈하고 정권을 잡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7차례 항해에 나서 동남아, 인도, 페르시아, 아프리카까지 방문했다. 현지 지배자들에게 도자기와 비단을 나눠주며 중국 황제의 시혜를 베풀었다고 한다. 최근 영국 예비역 해군장교 개빈 맨지스는 정허가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보다 71년 먼저 발견하고, 남극의 마젤란해협을 마젤란보다 98년 앞서 통과했다는 중국, 세계를 지배하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쉬쭈위안() 교통부 부부장은 정허에 대해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를 지휘하면서 한 치의 땅도 점령하지 않고 타국을 우정으로 대했다며 이는 중국의 새 외교정책인 화평굴기(굴평화적으로 우뚝 일어섬)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새 지도부는 덩샤오핑()이 제시했던 도광양회(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 대신 화평굴기를 새 외교전략으로 채택했다. 국력 신장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를 새로운 강대국의 출현 선언쯤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허에 대해서도 그가 중국 보물을 나눠주는 대신 조공을 강요했던 점을 들어 그를 중화질서 구축의 선봉장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중국은 지난해 유인우주선 발사 등으로 민족주의가 한껏 팽배해 있다. 최근 고구려사 왜곡에서 보듯 정허 열풍도 세계사를 중화사상에 맞춰 재구성하려는 전주곡이 아닐까.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