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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으로 향하는 강물처럼

Posted October. 22, 2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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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군에는 동강만이 아니라 서강도 있다. 그 서강이 내려다보이는 괴골마을 언덕배기의 외딴집에는 목사인 저자(41)가 11년째 이 강을 지키며 산다. 강 옆에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서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막아내기도 했다. 서강이 참으로 고맙다고 할 만도 한데 웬걸,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오히려 저자다. 그에게 삶의 진리와 지혜를 서강이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서강과 동거하면서 얻은 배움과 감사의 기록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잔디밭을 망치는 줄만 알았던 잡초들이 사실은 저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은 질경이 꽃이 가르쳐준다. 길고 가냘픈 대롱에 수십 개의 작은 점 같은 백색의 꽃술들이 미세한 바람결을 따라 떨듯이 아스라이 흔들리는 황홀한 모습이란.

저자는 그 순간 제초제 뿌리기를 멈춘다. 제비꽃, 구승봉이, 꽃다지, 애기똥풀, 물솜방망이, 꿀풀, 산괴불주머니 같은 잡초들이 무질서하게 자라는 속에서 그는 생명의 다양함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늘 귀찮고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며 끊임없이 제초제의 공습을 당하면서도 생명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잡초의 삶에서 그는 도전정신과 용기를 배운다.

가장 높은 하늘에서 내려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물,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기뻐하는 강물에서는 겸손을 배운다. 나뭇잎 끝에 매달린 이슬을 사진에 담고는 아름다움은 특별한 곳, 특별한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의 열린 눈과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지가지 다른 색의 단풍에서는 다름과 차이야말로 경이로움과 놀라움이며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열쇠라는 것을, 벌레 먹어 구멍이 뚫렸지만 악착같이 줄기에 매달린 잎에서는 상처 입은 한 부분 때문에 나의 소중한 삶 전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배운다.

그러나 이런 배움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온몸을 자연에 맡긴다. 오감을 집중한다. 엎드려 흙냄새를 맡고, 상수리나무를 껴안은 손등을 기어오르는 개미와 교감하려 노력한다. 베짱이가 개미를 뾰족한 입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는 모습이나 줄기 끝 잎사귀가 땀을 흘리는 장면은 그냥 숲 속을 걷는 것만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광경이다.

저자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경외다. 그는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말한다. 안다는 것은 식물의 이름과 생태만 아는 것이 아니다. 이는 나의 시각에서 너를 분석하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앎이란 너의 입장에서 너를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배웠다.

물론 저자가 자연에게서 배운 이 모든 것을 이전에 모르지는 않았을 게다. 단지 지식처럼 머릿속에 저장돼 있었을 뿐이다. 박제된 지식에 숨을 불어넣어 지혜로 바꿔준 것이 바로 서강이었다. 서강 수면을 나는 물총새였고, 117개의 꽃이 117개의 씨앗으로 바뀌는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준 민들레였다.

저자는 숨 가쁘게 사는 우리들에게 숲처럼 고요히 머무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존재를 그 자체로 기뻐하라고 말한다. 추운 겨울에 오히려 껍질을 벗고 뽀얀 새살을 드러내는 버들강아지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말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슬픔 속에서 기쁨을 이야기하라고 속삭인다.

서강이 저자에게 마음을 열고 들려준 이야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민동용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