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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

Posted November. 13, 20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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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대혁명(문혁)은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나이트메어나 13일의 금요일처럼 수없이 반복 제작된 공포영화다. 홍위병()은 그 공포영화의 살인마인 프레디나 제이슨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악령이 씐 장난감 인형 처키다.

한국의 현대사조차 제대로 모르는 이들에게 남의 나라 현대사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편한 비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너무 단편적인 설명이라고? 문혁과 홍위병은 이미 그 역사적 실체를 떠나 집단 광기나 철부지 친위세력을 뜻하는 문학적 수사가 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올해 미국에서 논픽션으로 출간된 홍위병은 문혁이 비명 요란한 허구가 아니라 비명마저 집어삼켜야 했던 현실이었음을, 홍위병은그 비극의 가해자였을 뿐 아니라 희생자였음을 생생히 증언한다.

저자 션판(50)은 미국 중부의 작은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의 경력을 보면 그와홍위병의 관련성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그의 이름에는 혁명의 낙인이 붉게 찍혀 있다.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청() 왕조, 그리고 외세에 저항한 혁명가였다. 부모도 일본과 국민당에 맞서 싸우는 공산혁명가의 삶을 사셨다. 그리고 첫 아이의 이름은 혁명가에게 걸맞은 판()자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름은 수백만 노동자 중 평범한 한 명을 의미했다.

그처럼 혁명의 피가 흐르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66년 5월 17일 인민일보에 실린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곳곳에 숨어 있는 적들을 찾아내 처단하라는 마오쩌둥()의 명령을 신의 계시처럼 받든 열두 살의 홍소귀(어린 홍위병)였다. 군 장교였던 아버지, 당 간부였던 어머니와 함께 베이징()에 살던 그는 온갖 서적을 불태우고, 학교 교사와 지도급 인사들에게 잔인한 린치를 가하며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그에게 문혁은 신나는 게임이었다. 부모도, 교사도, 그 누구도 그 게임을 방해할 수 없었다.

교사와 수업이 사라진 학교에서 그들은 만리장성 투쟁조니 두려움 없는 붉은 혁명군이니 하는 서클만 결성하면 바로 교실을 하나씩 차지할 수 있었다. 숨어 있는 적들은 마오쩌둥을 제외한 모든 권위의 소유자였다. 그 권위는 지식과 재산, 권력을 갖춘 사회 엘리트들이었다.

수만 명의 홍위병이 축구장에 집결해 군 장성이나 베이징 시장을 벌거벗기다시피 하고 온갖 굴욕과 폭력을 가하며 열광하는 장면을 읽노라면 광장의 고문이 밀실의 고문을 능가할 수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또 수백만 명의 홍위병이 톈안먼() 광장에 모여 하나의 점에 불과한 마오쩌둥의 출현에 집단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다 혼절하는 장면에선 집단 최면의 섬뜩함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문혁은 그저 혼란을 위한 혼란이었고, 홍위병은 권력 투쟁의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끊임없이 숨어 있는 적들을 찾아 헤매던 홍위병들은 산 사람의 배를 가르고 간장을 쏟아 붓는 광기에 사로잡히고, 결국 서로를 죽이고 죽는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홍위병의 실상을 고발하는 전반부가 아니라 그러한 삶을 전복해 가는 후반부에 있다. 2년의 홍소귀 생활이 끝난 뒤 그는 오지로 내려가 노동자 농민으로 살아가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교시를 좇아 부모를 떠나 수천km 떨어진 황무지에서 무지렁이 농사꾼으로 4년, 그리고 다시 원인불명의 자살자가 속출하는 공장 노동자로 6년을 산다. 그동안 그는 혁명의 칼에서 혁명을 향한 비수로 벼려진다.

그가 민중 속에서 배운 것은 혁명성이 아니었다. 그들의 건강한 낙천성과 노회한 처세술이었다. 그는 이를 무기로 삼아 문혁으로 인해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기 위한 복수에 나선다. 그는 주경야독()으로 지식을 쌓는 한편으로 아부와 매수, 그리고 거짓으로 우매한 당 관료들을 구워삶아 대학생이 되고, 끝내 1984년 미국 유학과 함께 그들과 결별을 고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혁명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강렬한 메시지 못지않게 소설에 필적하는 흡인력을 지녔다. 홍소귀 시절 저자가 처절히 파괴했지만 평생 구원의 여인이 된 리링과의 비극적 사랑은 영화 닥터 지바고를 연상시킬 만큼 극적이다. 또 스스로를 수많은 모험 끝에 옥황상제를 향해 반기를 들었던 손오공에 비유하는 저자의 해학성이 도처에서 빛을 발한다.

원제는 Gang of One(2004년).



권재현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