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 때 임금들은 민생()을 직접 살피기 위해 미복잠행()을 자주 했다. 조선 성종은 청계천 광교를 지나다 다리 밑에서 웅크려 있는 백성을 만났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김희동이었다. 여관을 잡지 못해 다리 밑에서 밤새우던 김희동은 우리 임금님이 어질고 착하여 백성들이 편하게 잘 삽니다. 그래서 해삼과 전복을 임금님께 드리려고 올라왔지요. 임금님 사시는 데를 좀 가르쳐 주세요라고 했다.
한국의 대통령들도 민생 살피기에 나선 적은 많지만 미복잠행은 아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새벽녘 시장 골목의 해장국집에 들러 택시운전사 등 시민들을 만나기도 하고, 최전방 초소로 병사들을 찾아가기도 했다. 새벽부터 욕하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면전()에서 욕하는 국민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다가구 임대주택과 마포자활후견기관 등을 찾아 서민의 애환을 듣는 민생투어를 한다. 대통령이 성종처럼 신분을 숨기고 눈과 귀를 연다면, 김희동 같은 사람을 몇이나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치인들의 공개된 민생투어는 대부분 생색내기에 그친다. 2002년 대선기간 중 이회창 후보는 조작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서민용 임대아파트를 방문했지만 그곳에 살지도 않는 신혼부부와 예비부부를 참석시켜 사진 찍기 투어를 했다는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에 독거노인과 재래시장을 찾고, 중국도 당일치기로 방문했다. 그는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지만 홍보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임시국회가 끝나자 열린우리당은 민생 속으로를 외치며 당직자뿐 아니라 소속 의원 대부분이 분담해 민생투어에 나서고 있다. 7일에는 2개 팀이 인천소상공인지원센터와 경기신용보증기금 안양지점에서 일일 상담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여당은 지난해 여름에도 민생투어를 했지만 국민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듯이, 내놓고 하는 민생투어만으로는 민생에 도움이 되지 않음이다.임 규 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