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3대학과 파리7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진명(59) 교수는 프랑스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인으로 꼽힌다.
이방인으로서 프랑스 대학의 정교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더 나아가 5년 전에는 프랑스 정부가 주는 박사학위 지도자격(HDR)을 따냈다. 한마디로 프랑스에서 교수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뜻이다. 1971년 유학생 신분으로 프랑스에 도착한 지 30년 만이었다.
현재 직함에서 알 수 있듯 이 교수의 본업은 프랑스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학으로 박사 학위를 따려는 전공자들을 지도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독도 연구가로 더 알려졌다. 독도에 관한 자료를 발굴해 꾸준히 논문을 쓰고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10년 전 호기심 차원에서 고지도와 고문서를 뒤지기 시작한 작업이 어느새 본업보다 더 커져 버린 셈이다.
이 교수는 이달 초 독도, 지리상의 재발견(삼인)을 펴냈다. 1998년에 발간한 초판에 새로 발견한 지도와 자료를 추가한 개정 증보판이다. 이 책에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역사적으로 입증하는 새로운 지도 4점이 실렸다.
15501600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전도에는 독도가 울릉도의 왼쪽에 있고 두 섬이 한반도에 바짝 붙어 있다. 이 교수는 독도의 위치 표시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독도가 육지와 울릉도 사이에 있다는 점, 두 섬이 육지와 가깝다는 점은 이 섬들이 한국의 영토임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는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를 바르게 표시한 가장 오래된 지도로 꼽힌다. 이 교수는 이 밖에 Tok Do라는 명칭이 사용된 프랑스의 세계 지도책(1959년라루스 출판사)과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도 가운데 최초로 Tok Do라는 이름이 붙은 1971년판 지도를 소개했다.
22일 파리 근교 자택에서 만난 이 교수는 더는 덧붙일 내용이 없는 완결판이라고 이번 책을 자평했다. 자택 거실과 서재에는 동서고금의 지도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월급의 상당 부분을 지도와 자료 구입에 쓴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그는 대학 때 외교학과의 국제법 강의를 들으면서 독도를 둘러싼 분쟁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색을 하고 독도 문제를 파고들자고 한 건 아니다면서 외국에 나와 있는 김에 자료나 한번 뒤져 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파리의 뱅센 고성()에 있는 프랑스 해군부 자료관부터 시작해 국립문서관, 국립도서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얻은 작은 힌트를 들고 지방의 고문서 보관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 교수는 내친김에 동해 명칭 연구도 병행했다. 그는 자료들을 찾아보면 볼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18세기까지의 서양 지도를 보면 3분의 2가 한국해로 표기돼 있다가 19세기부터 갑자기 일본해로 표기가 바뀐 사실을 발견한 것. 이 교수는 국력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의 학계와 정부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에 오류가 바로잡혀 가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셔널지오그래픽 2005년판 세계 지도를 좋은 사례로 들었다. 이 지도에는 일본해와 동해가 함께 기재돼 있다. 이미 세계에서 일본해라고 굳어져 버린 상황이라면 병기() 로비라도 펼쳐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이 교수는 이제 독도에 관한 연구는 이쯤에서 접을 생각이다. 프랑스에서 추가로 발굴할 만한 자료가 더 없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신 동해 문제에 관해선 연구를 계속할 작정이다.
이 교수의 부인은 유학생 때 만난 일본인 이시히 요코(62) 씨다. 함께 소르본대를 다니던 1979년 결혼식을 올렸다.
이시히 씨는 파리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비롯한 몇몇 그랑제콜(프랑스의 전문엘리트 양성교육기관)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남편의 연구를 일본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남편이 학자적인 관심에서 하는 연구니까 이렇다 저렇다 참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금동근 gold@donga.com